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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삶나눔

델타변이로 인한 뉴질랜드 락다운(Lockdown) 1일 차, 슬기로운 집콕생활

by Joy_Tanyo_Kim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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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다운 1일 차 아침에 창문으로 바라본 집 앞, 원래 한적한 동네지만 유난히 더 한적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오늘 새벽 12시를 기점으로 뉴질랜드는 다시 코로나 19 레벨 4단계로 '봉쇄령(Lockdown)'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이미 4명의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왔고 그중 1명은 간호사로 이미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상태였다고 합니다. 백신이 그냥 뚫리는 상황이네요. 어쨌든 그로 인해 지역사회에 감염이 얼마나 되었을지 역학조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둘러 둘러 옆으로 멀게 지나 만 가도 감염된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났습니다. 

 

작년 초 코로나가 처음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을 때 락다운이 되었었는데 그 후 처음으로 겪는 상황입니다. 사실 온 세계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마스크로 인한 답답함과 불편함을 호소할 때 뉴질랜드 사람들은 참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첫 락다운 이후 국경이 막히고 해외에서 귀국하는 키위들 또한 무조건 정부가 지정한 격리시설에서 격리를 해야만 했기에 지역감염이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는데요. 그렇다 보니 지난 1년 반의 시간 동안 마스크 없이 안전거리 유지할 것도 없이 2019년과 다름없는 일상을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뭐, 기업이나 국가 입장에서는 분명 큰 손해와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사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랬습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카페에 출근을 하고 커피를 만들며 손님과 이야기하고 샌드위치를 열심히 만들었는데...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장도 보러 다니고 쇼핑몰도 가고 공원에 산책도 다니고 말이죠. 일단 수목금 3일간의 4단계 락다운이 시행되었지만, 적어도 2주간은 이런 시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3단계로 레벨이 떨어지더라도 음식점의 경우에는 드라이브 스루를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 정도만 영업이 가능하다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저녁시간 뉴스를 통해 재신다 총리의 레벨 4에 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델타 변이 바이러스 소식은 평온했던 일상을 제대로 깨부수는 큰 돌덩이였는데요. 순간 오늘 오전에 열심히 만들었던 캐비넷 푸드와 냉장고 속 샐러드 야채, 우유, 크림 등이 걱정되었고 곧바로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님, 뉴스 보셨어요? 당장 락다운이래요. 걱정되서 전화했어요.'

'네네, 안그래도 뉴스 보고 있어요. 냉장고 정리하러 가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조이 도와줄 수 있어요?'

'네, 가능해요. 출발하실 때 연락 주시면 저도 바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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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5분 거리에 있어서 가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받고 곧장 출발했고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씩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실온에서 보관하던 빵 종류는 모두 개별로 포장해서 냉동실에 수납하고 금세 상하는 샐러드류와 갈아놓은 당근 같은 야채들은 따로 뺐습니다. 우유나 크림은 사용기간이 충분했고 문제는 캐비닛 푸드였습니다. 화요일이라 이번 주중에 판매하려고 넉넉히 만든 음식들이 많았거든요. 샌드위치류는 매일 아침마다 만들지만, 그릴이나 오븐에 구워나가는 소세지롤이나 콘 프리터, 토스티, 프리타타 등 오븐이나 팬에 구워 만들어낸 음식들은 보통 한 주간 판매를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빼려니 마음이 무거웠죠. 

 

 

락다운 기간 중에 먹을 일용할 양식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만큼 가져왔습니다. 절반은 사장님이 가져가고 절반은 제가 가져왔어요. 하나씩 소개하자면 바질 페스토 치킨 아보카도 샌드위치, 비프 파니니, 에그 큐컴버 클럽 샌드위치, 소세지롤, 베이컨 프리타타, 크로와상, 콘 프리터, 애플 시나몬 브래드, 치즈 스콘, 데이트 스콘, 브라우니, 햄치즈토마토 토스티입니다. 오늘 아침에 열심히 만들었던 음식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사실 이걸 다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니 직원 입장에서 감사하고 좋기도 했지만,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기에 속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사장님 마음은 오죽할까요. 집으로 돌아온 뒤 텍스트를 하나 보냈어요.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오픈할 때 3배, 4배로 채워지길 기도할게요. 이 기간 동안 재충전하는 시간 되시길 바라요.'

'고마워요. 조이도 푹 쉬어요!'

 

정부가 까라면 까야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게 문을 닫게 되면 일단 구입해놓은 식재료 부담과 매출을 올릴 수 없다는 부분에서 사장님 입장에서는 마음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제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을 다해 적어 보냈어요. 하, 일단 저도 문제네요. 당장 일을 못하니 저도 주급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보조금(Subsidy)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집에 빵을 좋아하는 빵돌이가 2명이 있는데, 이걸 다 들고 집으로 돌아가니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뉴질랜드의 가장 큰 대형마트, 파킨세이브

그나저나 신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락다운이라 학교는 당연히 쉬지만, 마트는 필수 직업군이라 똑같이 출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제저녁 6시쯤 락다운에 대한 발표가 났는데요. 제가 카페에 음식 정리를 하러 갔던 시간이 대략 저녁 8시쯤이었습니다. 카페 가는 길에 대형마트 중 하나인 '뉴월드'가 있는데요. 갑작스러운 발표에 놀란 사람들이 마트를 털러 엄청나게 몰렸더라고요. 그래서 그 밤에 도로에 차가 정말 많았습니다. 이 동네에 저녁 8시에 자동차가 다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근데 정말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시각 뉴월드로 장 보러 갔던 플랫 메이트 친구 말을 들어보니 이미 소스 코너와 빵 코너, 파스타 코너는 텅텅 비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저희 신랑은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하... 내일 일할 때 죽어나가겠네'

'여보, 힘내 ㅜㅜ'

 

마트에 물건을 채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신랑이 아무래도 많은 고생을 할 것 같습니다. 공부하랴, 일하랴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우리 신랑, 얼마 남지 않은 유학 생활 가운데 지치지 않고 졸업까지 힘내기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마트 물건을 한 번에 쓸어가는 일명 '패닉 바이(Panic buy)'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뉴질랜드에서도 약간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뭐 매일 조금씩 채워지며 개수 제한을 두기 때문에 없으면 다음날 일찍 가면 구입할 수는 있는 딱 그 정도의 상황입니다. 

 

 

락다운 1일 차 아침에 배송된 아이허브 립밤

어머나, 택배는 일을 하나 봅니다. 미국 아이허브로 해외배송 넣었던 물건들이 오늘 아침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필수 직업군에 포함이 되나 봅니다. 한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종류의 립밤만 사용하고 있는데요. 유기농에 꿀로 만들었고 바른 느낌 거의 없이 촉촉하고 끈적함이 없다 보니 애정하는 제품입니다. 이 중에서 솔직히 완전 무향인 왼쪽에서 두 번째 하늘색 립밤이 제 최애인데요. 이만큼 종류별로 묶어서 3불에 판매하는 행사를 하고 있길래 그냥 이걸로 주문했습니다. 

 

 

시래기 된장국과 불고기

'J야~ 누나 시래기 된장국 할건데 점심 같이 먹을래?'

'저도 조인이요! 냉장고에 불고기 재료 있는데 그거 쓰실래요?'

'그래~ 그러면 누나가 불고기 양념 준비할게! 아마 지금 밥 준비하면 1시간 뒤? 1시 30분쯤 밥 먹겠다. 일하다가 부르면 재깍 나와~'

 

락다운으로 한 집에 사는 모두가 집에서 재택근무, 재택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덕에 오랜만에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1시 30분쯤 점심 겸 저녁으로 함께 먹은 밥상입니다. 냉동실에 있던 시래기를 꺼내고 두부를 자르고 된장을 풀어 시래기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며칠 전에 담은 김치를 꺼내 조금 썰고 에밀리네 집 닭들이 낳은 달걀도 구웠지요. 밀리네 닭들이 매일 달걀을 잘 낳아서 제가 받아먹는 달걀이 차고 넘치는 요즘입니다. 확실히 신선하고 맛있어요. 

 

*시래기 만들기

 

배추시래기 만들기 아주 간단해

요즘 일교차가 커서 따끈한 국물이 땡길 때가 꽤 자주 있는 편이에요. 때에 따라 각종 국물 요리를 해먹긴 하지만 오늘은 뜨끈한 시래기 된장찌개를 끓여봤어요. 최근에 김장을 했는데 배추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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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둘러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에 차린 게 많았지만, 가장 맛있는 건 달걀에 김치와 김을 얹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느껴졌어요.

 

'우와.. 점심에 이렇게 먹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시래깃국 너무 맛있어요. 이 귀한걸... 잘 먹겠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 다니는 J는 회사 근처에서 늘 카페 캐비넷 푸드나 포장음식만 먹다 보니 점심으로 이런 한국 밥상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같네요. 뭐, 덕분에 저희도 불고기 맛있게 먹었어요. 

 

 

브라우니 잘라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습니다. 한번 먹을 때 이렇게 야무지게 먹어주는게 참 중요하죠. 살찌는 지름길일지도... 어쨌든 카페에서 어젯밤 급하게 가져온 음식 중에 사장님이 챙겨주신 브라우니가 있었는데요. 와, 정말 맛있었습니다. 브라우니 안에 커다란 초코칩을 많이 박아 넣으니 식감이 너무 좋았어요. 브라우니는 확실히 아메리카노와 쿵짝이 잘 맞네요. 이렇게 락다운 첫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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