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요즘 시기적으로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 탓에 여름이 온다는 건 먼 이야기 같다. 이 시기에도 햇살 아래에 있으면 한여름의 정오 같고 그늘에 들어서면 겨울의 아침처럼 추운 곳이 바로 크라이스트처치이다. 뉴질랜드 또한 한국처럼 사계절을 가지고 있지만, 남반구에 위치해 계절이 반대로 돌아간다. 한국은 지금 한창 추워지기 시작하는 겨울의 시작이지만, 이곳은 곧 여름이 시작된다.
뉴질랜드의 봄은 9월부터 11월이며 12월부터 2월까지는 여름, 3월부터 5월은 가을, 6월부터 8월까지는 겨울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의 날씨가 극단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한겨울 최저 기온이 0도 주변에서 머무는 정도이고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도시 안에서 눈 내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다. 한겨울에도 날이 좋은 날에는 한여름의 볕을 만날 수 있고 한여름에도 날이 좋지 않은 날에는 한겨울의 추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뉴질랜드의 하루에는 사계절이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혹시 뉴질랜드의 남섬, 특히 크라이스트처치나 그 아래 지역을 방문한다면 시기에 관계없이 따뜻한 옷을 꼭 챙기는 게 좋다.
여전히 춥지만, 그래도 봄이라고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와 내 텃밭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다. 매년 깻잎과 파, 부추, 딸기 정도는 키워서 먹었는데, 올해는 상추도 좀 심어볼까 싶어서 마이터텐에 잠시 들렀다. 마이터텐의 가든코너에서는 뉴질랜드의 다양한 야채 모종과 꽃 모종을 구할 수 있다. 씨앗도 판매하고 있지만, 이 날씨에 온실 없이 모종을 키운다는 게 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나는 애초에 조금 큰 모종을 구입했다.
상추 모종의 종류만해도 굉장히 다양했다. 모종은 종류와 크기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꽤 났는데 나는 조금 큰 아이들로 6개의 모종이 섞인 것을 구입했다.
첫눈에 예뻤던 것으로 골라 잡았다. 가끔 봄에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는 이렇게 모종을 선물하기도 한다. 물론 텃밭에 애정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텃밭에 채워 넣을 야채 전용 흙도 한 포대 구입했다. 흙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 토마토 전용, 레몬 전용, 복합 야채 전용 등이 있었는데, 종류에 따라 흙의 산도와 영양분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이미 거름이 섞인 흙이라 거름을 따로 구입하지는 않았다.
올해도 깻잎 부자가 되었다. 처음 심었던 깻잎 모종 이후 벌써 8년째 깻잎은 알아서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다. 씨앗을 털 필요도 없다. 알아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빽빽한 깻잎들이 올라온다.
유독 더 잘 자란 녀석들을 골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 깻잎은 2 뿌리 정도 같이 심어도 잘 자란다. 이렇게 심어주면 보통 1미터 정도 높이로 자라는 것 같다. 땅에 심으면 더 잘 자랄 테지만, 아쉽게도 땅이 넉넉하지 않다.
이건 친구집으로 분양 갈 깻잎 모종들이다. 흙채로 떴더니 한 박스가 모였다.
딸기도 키우다보니 굉장히 풍성해져서 바스켓 안에서 키우기 버거울 양이되었다. 어차피 매년 봄마다 흙에 영양 공급과 산소 공급도 할 겸 흙을 뒤엎는데 그 참에 절반은 솎아냈다.
이렇게 솎아낸 딸기는 깻잎과 함께 친구 집으로 분양 갔다.
흙도 호흡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저 두는 것이 아니라 매년 갈아 앞어 바람을 쐬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뒤엎을 때마다 거름을 넉넉하게 섞어준다.
이건 쓰레기 봉투인데 딸기 심을 때마다 유용하게 잘 쓰인다. 이런 비닐을 마이터텐이나 버닝스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비닐봉지 하나 잘라 쓰는 게 생각보다 훨씬 저렴하게 치인다. 특히 나는 바스켓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이즈가 딱이다.
이건 친구에게 내가 분양 받은 고추 모종이다. 친구 남편의 회사에서는 매년 봄마다 뭔가 키워내는 대회를 연다는데, 작년에는 감자 키우기 대회, 올봄에는 고추 모종 키우기 대회였다고 한다. 덕분에 내가 고추 모종을 4개나 얻었다.
고추 모종도 넉넉한 통에 심었다. 별 생각없이 두 뿌리를 함께 심었는데, 영상통화로 이걸 확인한 엄마는 고추는 하나씩 심으라고 조언하셨다. 엄마는 고추농사부터 배추, 벼, 수박, 딸기, 멜론, 참외까지 대규모 농사를 평생 지으셨던 전문 농부시다. 아는 게 없는 소규모 텃밭 농부는 엄마의 조언에 따라 곧장 고추를 옮겨 심었다.
상추는 일단 화단에 심었다. 야채용이 아닌 꽃나무용 화단으로 사용되던 것이라 사실 자리가 좀 애매하긴 했지만, 일단 심을데가 없어서 호미로 흙을 좀 갈아엎은 뒤 심었다. 시기를 봐서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올해 상추 값을 좀 아껴보고 싶단다.
이건 싹이 이렇게 올라온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얼마 전 마트에서 구입한 토마토가 맛이 좋아서 하나를 얇게 6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심었더니 이렇게 많은 싹이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스치듯이 봤던 정보였는데, 실제로 싹이 나니 기분이 좋았다. 이것들이 얼마나 잘 자랄지 모르겠지만, 일단 싹이 굉장히 많다. 모종으로 잘 키워내면 나눔을 해야지.
파가 순식간에 이렇게 자라 꽃이 폈다. 꽃이 지면 까만 씨앗으로 가득해지겠지. 애초에 마트에서 구입한 파를 뿌리 쪽 1cm 정도 잘라 심은 것인데, 이렇게 잘 자라서 기분이 좋았다. 여름에도 파 값은 그리 저렴한 편이 아니다. 뉴질랜드의 날씨는 파를 사계절 키울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겨울에 이런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겨 있는 것들이 얼어 죽을 날씨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봄, 여름, 가을에 많이 키워 뒀다가 겨울에는 하나씩 뽑아 먹는다.
텃밭 일하고 먹으면 딱인 보쌈 한상, 친구들과 함께 김치도 만들고 수육도 삶았다. 이번에는 숄더를 사서 삶았는데, 부위나 맛이 딱 한국에서 먹던 앞다리 사태다.
아주 조금이지만, 첫 수확한 상추다. 이걸로 남편 점심 도시락에 샐러드를 넣어줬다. 점점 더 풍성한 수확을 할 생각에 오늘도 행복하다. 요즘 가든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직 쌀쌀한 날씨 탓에 크는 속도가 그리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그래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물만 줬는데, 이렇게 잘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텃밭 야채들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한 뿌듯함으로 마음이 평안해진다. 별것 아닌 것에 의미가 부여되고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조금 더 채워지는 기분이다. 이제 심었는데, 벌써 깻잎과 고추, 토마토를 수확할 시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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