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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삶나눔

우리도 코비드에 확진되었다.

by Joy_Tanyo_Kim 2022.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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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확진된 것은 플랫 메이트 제이미였다. 금요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이미는

 

'누나, 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코비드에 걸린 게 아닐까요? 증상은 딱 코비드 같은데요.'

 

라고 말했다. 집에 있던 여분의 키트로 검사를 했고 곧 양성 반응 두 줄이 선명하게 나왔다. 코비드 오미크론 확진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격리생활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집에 먹을 것이 충분했고 특별히 부족할 것이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 달걀과 라면, 휴지 여분을 체크했던 것 같다. 

 

플메 제이미의 확진 키트

이런 물건을 내가 사용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아무리 전 세계적인 유행이라고 해도 뉴질랜드 남섬은 정말 오랜 기간 코비드가 퍼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저 안심하며 살았었다. 검사 결과는 제이미가 확진이었고 우리 부부는 음성으로 나왔다. 그래도 7일 격리는 함께 하게 되기에 두 사람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약국에서 무료로 지급받은 코비드 자가 검사 키트 4박스와 친구가 급한 마음에 주고 간 키트까지 총 5박스가 생겼다. 지정된 약국이나 센터에 신청을 하면 함께 사는 구성원의 숫자에 맞게 무료 키트를 나눠주고 있으며 원하는 경우 개인이 돈을 주고 구입도 가능하다. 내 걱정에 비싼 돈 주고 키트를 한 박스 구입해온 친구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런 키트를 실물 영접하는 게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자가 키트로 검사하는 일이 워낙 잦아서 새로울 것도 없겠지만, 여기서는 굉장히 새로웠다.

 

'아,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그 면봉이구나...'

 

어디까지 넣어야하는지 선이 분명하게 그어져 있었는데 끔찍했다. 저렇게 깊이 들어갈까 싶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들어가더라. 

 

우리 식구들이 격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하나둘 구호물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까운 동생이 주고 간 과자 뭉치. 평소 과자를 거의 사 먹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는 좋은 간식이었다. 특히 신랑은 이런 과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잘 사 먹지는 않는다. 굳이 사 먹지는 않지만, 있으면 정말 맛있게 잘 먹는 그런 음식이 바로 과자다. 

 

자가 키트 주고 간 친구가 집 앞에 두고 간 엄청난 양의 복숭아와 오이, 잼이다. 요즘 비가 잦아서 그런지 복숭아가 상당히 빠르게 상하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받은 날 재빠르게 모든 복숭아를 청으로 작업했다. 

 

지인이 대문에 걸어두고 간 삼겹살 2팩이다. 양이 상당했는데 일주일 동안 매일 먹었지만 다 먹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를 챙겨주고 며칠 뒤 이 지인과 그 가족도 확진이 되었다. 

 

또 다른 지인이 주고 간 롤케이크이다. 간식으로 받아 맛있게 먹었다. 이 지인의 가족도 다음 날 모두 확진되었다. 

 

복숭아 준 친구가 주고간 오메기떡이다. 치치에는 오메기떡을 파는 한국 떡집이 없지만 약간의 대량 주문 시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오메기떡을 처음 먹어봤는데 짧은 평을 남기자면 팥앙금이 들어간 쑥떡이랄까? 이름만 듣고 정말 새로운 맛일 거라 상상했는데 내가 아는 맛이라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우리동네 버스정류장

코비드 확진자, 밀접 접촉자도 동네 산책이 가능하다. 당시 나는 코비드 환자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밀접 접촉자였지만 아침마다 동네 산책을 다녔다. 사진으로 충분히 알겠지만, 동네를 걷다가 길에서 사람을 만날 확률은 굉장히 희박하다. 아마도 이런 곳이라 확진자도 산책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이 이렇게 예뻤네. 한국 버스 정류장에 비하면 정말 소박하고 올드하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오면 약 1시간이 소비된다. 

 

노선은 리카톤으로 가는 120번 하나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가 오는 시간을 확인하려면 구글 지도를 확인하면 된다. 

 

나의 확진 키트

그리고 우리도 확진되었다. 가족 중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하면 한 번에 모두가 다 같이 걸리는 게 아니라 한 명씩 차례대로 아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플메가 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쯤, 정확히 6일이 지났을 때 신랑이 아프기 시작했다. 두통과 가벼운 편도 통증으로 시작된 신랑의 증상은 그날 밤 정점을 찍었는데 새벽 내내 40도 고열에 시달렸다. 쇅쇅 거리는 신랑의 숨소리에 잠이 깼던 나는 처음 겪어보는 누군가의 고열에 발을 동동 굴렀었다. 약통을 열어보니 해열 패치가 있었는데 급한 데로 신랑 이마에 그걸 붙이고 물수건을 만들어 신랑 얼굴과 팔다리를 계속 닦았다. 해열 기능이 있는 약이 뭔지 몰라서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해열제 있냐고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돌렸었다. 알고 보니 신랑이 이미 먹은 이부프로펜이 해열제였다. 

 

3차 부스터 샷까지 맞았던 플메는 인후통이나 고열, 기침이 전혀 없었다. 그저 코감기가 심하고 피곤함, 무력감이 심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우리가 3차 부스터 샷을 맞지 않아서 이렇게 세게 아픈가 보다 싶기도 했다. 아침이 되자 신랑의 열은 37-38도 사이로 내려왔다. 남편이 아파도 이모양인데 애들이 아프면 부모들의 애간장이 다 녹는다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었다. 이후 신랑은 인후통이 심각하게 왔는데 한 이틀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건 내 평생에 처음 느껴보는 통증인 듯. 넌 절대 걸리지 마라' 

 

신랑이 이렇게 말하고 정확히 4일 후 내가 확진되었다. 사실 처음 플메가 확진되었을 때 신랑과 나도 목감기 증상이 조금씩 있었는데 목이 조금 칼칼한 정도였다. 사실 나는 건강 염려증을 가진 사람이라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자가 검사를 했다. 그래서 음성 반응이 나온 검사 키트가 무려 5개나 쌓였다. 그래도 검사 키트에서는 음성으로 나왔었기 때문에 아, 나는 걸리지 않았나 보다 싶었는데 내 생각에는 이미 그때 걸렸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몸속에서 시기를 보며 몸집을 키우다가 이렇게 빵 터진 게 아닐까? 정말 내 생애 처음 느껴보는 그런 통증이었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말로 오미크론 인후통의 증상을 적을 때 나는 그게 다 약간은 부풀려진 게 아닐까 싶었는데 내가 겪어보니 다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기존 코비드에 비해 오미크론은 조금 만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걸려보니 아니었다. 사람이 걸릴 질병이 아니었다.

 

지금은 회복기에 접어들어 내일이면 나도 격리가 끝난다. 목이 너무 아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밤이면 심해지는 기침에 힘들었다. 이제는 인후통이 거의 나았고 어제부터는 콧물, 코막힘, 눈물, 눈 따가움, 기침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이러다가 완전히 나아지겠지. 플메와 남편도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감기 증상이 조금씩 남아있다. 어떤 사람은 반년이 지나도 양성 반응이 뜬다고 하던데, 그게 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필리핀 빵집에서 사다 준 타로 빵. 필리핀 사람들이 운영하는 이 빵집은 차이나타운인 처치 코너에 위치했는데 한국인들 사이에서 맛있기로 유명하다. 먼저 확진되었던 이 언니는 격리가 풀린 날 곧장 빵을 사서 내게로 왔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눴다. 

 

복숭아를 준 친구가 문 앞에 두고 간 두 번째 보급물자는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달걀이다. 덕분에 나는 1년이 넘도록 마르지 않는 달걀을 경험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내 친구는 나 먹이려고 닭을 키우는 게 아닌가 싶다. 

 

친구가 준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청 / 꿀

코비드로 확진 중에 가장 열심히 먹은 것은 따뜻한 물과 복숭아청, 꿀이다. 신랑 입사 웰컴 키트에 들어있던 꿀 한 통을 이번에 다 먹었다. 매일 꿀차를 타서 플메, 신랑과 함께 먹었다. 복숭아청도 목이 아플 때마다 꿀차에 섞어서 먹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침 복숭아청을 만든 것이 신의 한 수였지. 

 

보급물자를 보내준 사람들도 줄줄이 확진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보급물자를 보내주려고 했지만, 격리에 격리가 꼬리를 물어 결국 마지막까지 가장 오래 격리를 했다. 받은 것에 그저 감사했다. 힘든 순간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을 한번 더 생각했다. 한 집에 함께 사는 우리 세 사람이 모두 아팠지만, 별다른 후유증이나 어려움 없이 코비드를 잘 극복해서 참 다행이다.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가 속한 캔터베리 지역의 하루 확진자 수는 (3월 30일 기준) 3천 명을 넘어섰고 전국의 하루 확진자는 1만 5천 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코비드 확산세가 정점에 도달했으며 이제는 감소 중이라고 한다. 치치에서 내가 알고 지내는 한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이미 다 걸렸다. 다 아프고 나니 오히려 자유를 얻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격리로 인해 기대하던 가을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가을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봐야 하니 오는 주에는 꼭 외출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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