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질랜드/삶나눔

매 주마다 예초기 돌리는 여자, 뉴질랜드에서는 필수

by Joy_Tanyo_Kim 2022. 2. 15.
반응형

매주 목요일 나는 예초기를 돌린다. 번사이드로 이사하면서 쓰레기통을 내놓는 날짜가 달라졌는데 이 동네는 매주 금요일 오전에 쓰레기통을 비워간다. 노란 통(재활용)과 빨간 통(일반쓰레기)의 쓰레기는 격주로 수거하지만, 초록 통(풀, 낙엽, 음식물 쓰레기 등)은 매주 가져간다. 이 나라의 집 특성상 가든 쓰레기가 워낙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위그람 집에 살 때는 디스포저(음식물 분쇄기)가 없었기 때문에 초록 통에 모든 음식물을 버려야 했다. 그래서 쓰레기통에서 냄새가 꽤 심각했던 기억이 난다. 매주 물로 씻는 것도 솔직히 힘들었다. 냄새도 역하고 벌레도 많이 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집에는 주방에 떡하니 디스포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부담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번사이드 집 앞마당 잔디를 미는 신랑

보통 디스포저가 없는 집에서는 초록 통에 잔디나 낙엽, 신문지 등을 넉넉하게 먼저 깔아준 다음 그 위에 음식물을 버리고 또 그 위에 신문지나 잔디, 낙엽을 얹는 식으로 겹겹이 쓰레기를 넣는다. 그렇게 해야 바닥에 음식물 쓰레기가 떡지지 않고 냄새도 덜하기 때문이다. 간혹 비가 많이 오거나 신랑이 너무 바쁜 시기에는 종종 잔디 미는 타이밍을 놓쳐서 이런 어려움이 컸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위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잔디깎이만 있었는데 저건 내가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너무 무겁고 힘이 좋아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갔었기 때문이다. 

 

 

내 전용 예초기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작년 연말 박싱데이 세일 때 요 깜찍한 예초기를 장만했다. 스텐리에서 나온 나일론 커터 예초기인데 충전식이고 배터리는 모든 스텐리 제품과 호환이 가능했다. 나일론 커터가 2개가 달린 것이 있고 1개가 달린 것이 있었는데 1개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 (많이 저렴하기도 했다) 1개 달린 제품으로 구입했다. 

 

크기는 딱 다이슨 청소기 정도이고 무게도 다이슨과 비슷하다. 신랑은 군대에서 워낙 많이 만져봐서 이런 제품에 능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이었지. 한국에 살 때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온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 벌초를 하러 다니곤 했지만 내가 해본 것이라고는 그들의 도시락이나 간식을 준비하는 정도였다. 내가 직접 풀을 베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또 내 기억 속의 예초기는 시퍼렇게 날이 선 무시무시한 칼날이 달린 것이었다. 어깨에는 무거운 엔진과 기름이 들어간 가방을 메고 사용하는 그런 제품이었기에 사용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체력소모가 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놈은 다르더라. 요즘 시대가 많이 발전했나 보다. 

 

 

뒷마당으로 가는 길, 게라지가 보인다. 

신랑이 앞마당의 넓은 잔디를 작업할 때 나는 예초기를 들고 텃밭이 있는 뒷마당으로 간다. 

 

 

뒷마당은 하루 종일 해가 제대로 드는 지역이라 풀이 굉장히 잘 자란다. 그리고 절반은 타일이 깔려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서 올라오는 잡초가 상당히 많다. 이런 것들은 뿌리가 깊어서 손으로 뽑아주는 것이 좋다. 이런 놈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그때 예초기를 돌린다. 

 

 

넓은 부분을 신랑이 먼저 밀어줬다. 커다란 잔디깎이로 한번 지나가기만 해도 이 정도는 밀리니까. 게다가 신랑 잔디깎이에는 잘린 잔디 쓰레기가 밀리는 동시에 회수되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하긴 하다. 

 

 

나는 신랑이 지나간 자리를 열심히 마무리한다. 저런 코너는 신랑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 큰 잔디깎이로는 밀 수 없다. 섬세한 요놈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니면? 낫이 필요할지도. 

 

나일론 커터라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한다. 물론 굉장히 두꺼운 풀은 자르기 힘들 수 있지만, 이런 잔디밭의 풀 따위는 그냥 잘린다. 

 

 

타일 사이사이로 올라온 거침없는 잡초들의 모습이다. 부동산에서 인스펙션 나오면 이런 부분을 굉장히 많이 지적한다. 어떤 사람들은 타일 사이로 제초제를 뿌려서 아예 죽이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사이가 누렇게 색깔이 변한다. 나는 또 그런 건 싫더라고. 일단 초록이 좋다. 

 

 

앞마당 작업을 끝낸 신랑이 초록 통과 블로워(송풍기)를 가지고 왔다. 

 

 

사진으로 살짝 보이지만, 내가 사용하는 예초기는 잔디 쓰레기를 빨아들이는 기능은 없기 때문에 바닥이 조금 지저분하다. 그래서 블로워로 청소를 해야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이게 없으면 빗자루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블로워도 스텐리 제품인데 두 녀석이 서로 배터리 호환이 가능해서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초기를 돌리고 블로워로 청소를 한 뒤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타일 사이로 초록이 보이는 게 역시 좋다. 예전에는 신랑 혼자 잔디깎이를 밀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이제 서로 일을 나눠서 하게 되니 더 좋다. 

 

처음에 예초기를 돌렸을 때 생각보다 힘이 좋아 조금 무서웠고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풀려서 기분이 좋았다. 뭔가 막 자르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너무 재밌어서 보이는 족족 풀을 잘랐는데 무려 40분 동안 사용했더라. 그리고 그날 밤 두 팔이 후들거려서 핸드폰을 드는 게 힘들었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랑 비슷한 크기와 무게라 얕봤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잔디를 깎을 때 높이를 맞춰야 하다 보니 예초기를 적당한 높이로 들고 팔에 힘들 준 상태로 계속 작업했었는데 그게 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운동 부족인 게지. 이후 매주 예초기를 돌리고 있는데 매번 약간의 후들거림 후폭풍은 있다. 하지만 점차 미미해지고 있다는 것. 

 

'오빠! 나 예초기 돌렸어! 내가 이거 쓴다??'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었고 살면서 한 번도 사용할 줄 몰랐던 예상외의 물건을 내가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내게는 큰 기쁨이자 만족이었던 것 같다. 아주 소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뭔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너무 신이 났던 나머지 한국에 있는 오빠한테 카톡을 보냈다. 예초기 사진도 찍어서 보냈다. 매년 벌초할 때마다 예초기를 돌려왔던 오빠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행복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