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본드비(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했다. 11월 말에 이사를 했고 본드비 떼이지 않으려고 파이널 인스펙션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다. 에이전트 또한 청소 상태와 집의 전반적인 상태를 보고 감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완벽하다고 칭찬했었기에 본드비를 떼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이사를 준비할 때 주변에서 본드비를 떼였던 경험을 가진 지인들이 생각보다 많았었는데,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 확실하게 준비를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내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왔고 본드비를 돌려주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정말 기쁘고 뿌듯했었는데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왔다.
'그땐 못봤는데 정원 모퉁이 어딘가에 잡초가 조금 있네? 가드너를 불러서 풀을 뽑았고 돈이 얼마가 들었으니 본드비에서 뺄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풀 한포기까지 모두 뽑아내려고 작정하고 작업을 했었는데... 대체 어디에 무슨 풀이 있었던걸까. 사실 뉴질랜드는 여름이라 내가 뽑은 자리라도 다시 풀이 자라고도 남았을 것 같다. 어쨌든 결국 풀 뽑는 비용이 50불, 버리는 비용이 10불 총 60불이 청구가 되었고 60불을 제한 나머지 본드비를 돌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마스터 배드룸에 있는 전구 3개 중에서 1개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데 전구를 하나 갖다 주던지, 아니면 자기들이 사고 본드비에서 제하겠다고 했다. 우리한테 전구 여유분이 있었기에 갖다주겠다고 했더니 우체통에 넣어달라고 해서 넣어주고 돌아왔다. 전세 살면서 전구 나간거 하나까지 이렇게 모두 우리에게 청구를 한다는게 참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제 위그람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잊고 싶은데 아직까지 본드비가 입금이 되지 않아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뉴질랜드에서 렌트를 하면 본드비를 꼭 내는데 이 본드비는 에이전트도 집주인도 아닌 제 3의 다른 단체가 관리를 한다. 나라에서 지정한 곳에서 공식적으로 모든 본드비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본드비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이런 것이 존재한다. 뭐.. 그래서 본드비를 결국 받긴하겠지만, 연말과 연시가 끼이면서 생각보다 이 작업이 지연되는 것이 참 답답하다.
번사이드 집에 이사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 중에 하나는 바로 식기세척기 수저통 작업이다. 뉴질랜드는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도 식기세척기는 보통 다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게 너무나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혀 있다. 헌데 어느 집을 가나 동일하게 한국인이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는데 바로 수저통 바닥 구멍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이라 바닥에 구멍이 아주 큼직큼직한데 이 구멍으로 젓가락은 백발백중 빠진다. 그래서 이 공간을 제대로 막아주는 것이 필수다.
꾀를 냈던 것은 바로 화분 밑에 까는 용도로 종종 사용했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으나 가든 코너에서 판매하는 저 빳빳한 플라스탁 제품을 까는 것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작은 사이즈의 타이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쏙 들어가는 사이즈로 재단을 하고 타이로 단단하게 묶었다.
이렇게 하면 젓가락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식기세척기를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우리가 뉴질랜드에 오고 난 뒤 한국에서도 식기세척기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 식기세척기의 수저통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고.. 어쨌든 젓가락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생각보다 이게 큰 문제인 것 같다. 주부들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옛날 집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벌레가 많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집은 한국처럼 벽돌집이 아닌 나무집이다. 게다가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기 때문에 벌레천국이라 볼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벌레까지 포함한다면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있을까. 어쨌든 사진 속 거미는 생각보다 큰 놈인데 저렇게 쌩뚱맞은 장소에 종종 등장해서 우리를 놀래킨다. 그래도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모든 거미는 독이 없다고 한다.
사실 진짜 문제는 거미가 아니다. 거미는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해충을 잡아먹는다고 하니 오히려 이롭다면 이로운 곤충이다. 우리집의 진짜 문제는 '실버피쉬' 좀벌레이다. 어른들이 '좀이 쑤신다', '좀 먹었다' 등의 말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진짜 좀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뭘 먹고 사는지 잘 몰랐다. 그런 좀벌레를 뉴질랜드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집에서 처음 봤다. 처음에 봤던 녀석들은 정말 작고 은빛으로 빛나는 생각보다 손으로 잡을만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점점 다 큰 녀석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이 크니까 새카맣게 색도 변하고 크기도 너무 커서 정말 징그러웠다. 이 놈들의 주식은 직물과 종이라고 하는데 뉴질랜드 집은 카펫이 기본이니 이 놈들이 서식하기에 너무 좋은 장소였다. 비주얼이 너무 극혐이라 실버피쉬의 사진은 올리지 않았다.
주방과 화장실, 세탁실과 거실 등 여기저기서 랜덤으로 발견되는 이 녀석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 그러다 이틀 전 컴퓨터로 작업을 하며 타이핑을 치고 있던 내 손등 위로 뭔가가 툭 떨어졌는데 끔찍하게도 실버피쉬였다. 위치상 내 머리 바로 위에 전구가 있는데 아마 거기서 떨어진 것 같다. 사뿐하게 톡 떨어진 실버피쉬는 제대로 꿈틀거렸고 나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 곧장 구입한 것이 바로 사진 속 저 제품이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은 '버그 밤'이라 부르는 저 제품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실버피쉬는 직물을 먹고 살기에 사람 몸에 해를 가하는 벌레는 아니다. 하지만 배드 버그라고 불리는 해충이 나오는 집도 간혹 있는데 그런 경우 저 밤을 터뜨려 박멸하곤 한다. 나는 저걸 우리집에서 터뜨릴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집에서 종종 저걸 터뜨린다고 하길래 나도 이번에 터뜨리게 되었다.
오늘 외출할 일이 있어서 버그밤을 터뜨렸다. 한 박스에 총 3개가 들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한 번에 3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저 사진에 보이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집 구조여서 가장 비슷하게 위치를 잡아서 터뜨렸다. 신랑이 터뜨렸고 터뜨릴 때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가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깡통 스프레이처럼 생긴 버그밤을 열심히 흔들어준 다음 터뜨리면 엄청난 속도로 벌레를 죽이는 가스가 터져나왔다. 꼭 지하 암반수가 분출되는 느낌으로 가스가 뿜어져 나왔는데 어릴적 모기약을 뿌리고 다니던 소독차 생각이 잠깐 났었다. 터뜨릴 때는 모든 집의 창문을 꽁꽁 닫아야하고 3시간이 지난 뒤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켜줘야한다. 왠만한 주방용품은 모두 서랍 속에 넣었었지만, 그래도 찝찝해서 다시 사용할 때는 물에 씻어서 사용했다.
3시간이 지난 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세상 끔찍한 광경을 보게되었다. 신랑과 나, 플랫메이트 제이미 모두 함께 집으로 귀가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을만큼 많은 좀벌레들이 배를 까고 누워 있었다. 이곳저곳에... 청소기로 곳곳에 드러누운 좀벌레를 치웠는데 나중에는 몸이 근질근질하고 찝찝하더라. 와, 이렇게 많은 좀벌레가 우리집에 있었구나 싶었다. 엄마는 '옛날에 그거 없는 집 없었다~ 괜찮다~' 라고 하셨지만, 나는 꿈에서도 좀벌레가 나와서 기겁할만큼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한번 밤을 터뜨리면 6개월간 집 안에 벌레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못 믿겠고.. 한 3-4개월에 한 번은 이걸 터뜨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집은 오래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가든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벌레가 없는게 더 이상한 환경이다. 평생을 살아도 벌레와 친해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연과 나무는 좋지만, 벌레는 싫다는게 사실 말도 안되는 거지만... 그래도 벌레 없는 집에 살고 싶다. 그래도 바퀴벌레는 없는게 감사한건가 싶기도?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불 안을 샅샅히 검사하고 주변을 재차 스캔한 뒤 잠들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벌레 걱정 안하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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