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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삶나눔

한국에서 우체국 EMS 택배가 왔어요.

by Joy_Tanyo_Kim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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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보통 이렇게 아침 8시 언저리에 벨이 울리면 택배가 온 것이다. 마침 기다리고 있는 택배가 있었는데 역시나 그 택배가 맞았다. 일이 있어 나갈 준비를 다 했지만, 너무 반가운 우체국 택배가 오는 바람에 우리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박스를 뜯었다. 

 

언니가 품목란에 얼마나 꼼꼼하게 깨알 같은 글씨로 내용물을 적었는지 모른다. 정말 귀여웠다. 

 

부탁했던 택배 품목 외에 언니가 마음 써서 보내준 것들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미역과 다시마다. 안옥남 할머니 브랜드라는데 지난번에 받았을 때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무엇보다 질이 좋았다. 뉴질랜드 한인 마트에도 미역과 다시마가 입점되고 있지만 이런 퀄리티의 미역은 없다. 자른 미역도 아닌데 모두 작게 부서진 것들만 모여 있는 미역.. 나는 큰 미역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안옥남 할머니 미역은 딱 그렇다. 이번 미역과 다시마는 새언니와 오빠가 사준 것이라고 했다. 다 먹어 없어질 때까지 꾸준하게 잘 먹었다고 인증사진을 보내야겠다. 다음에도 또 보내달라고 ^^ 

 

 

미역과 다시마를 꺼내니 우리 물건들이 보였다. 미역과 다시마가 쿠션 역할을 제대로 해서 부서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둘 다 검은테를 샀다. 나는 눈이 많이 안좋은데 실수로 압축을 2번만 해서 뱅글이 안경이 되었다. 그래도 좋다. 

가장 기다렸던 물건이 바로 안경이다. 신랑과 나 둘 다 새 안경이 필요했는데 나가는 길에 새 안경으로 바꿔 쓰고 나갔다. 역시 한국 안경이 좋다. 신랑이 쓰던 이전 안경은 뉴질랜드에서 맞춘 안경인데 UV 차단 같은 기능이 하나도 없었다. 추가할 수 있는 기능조차 거의 없었고 안경테나 알의 선택지도 너무 한정적이라 안경 고르는 게 퍽 힘들었다. 게다가 안경은 또 어찌나 무거운지.. 고개만 숙이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무거운 안경은 정말 끔찍했다고 한다.

 

맞추는 것도 하루 이틀 걸리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안경을 맞추면 압축을 3번 이상 하는 게 아닐 경우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안경이 완성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어느 외국인들 안경 맞추는 건 백날 걸린다고 하는데 그 말은 진짜다. 안경테의 종류, 안경알의 종류, 정확도, 맞추는 시간은 한국이 세계 으뜸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 

 

 

사진 속 물건이 모두 언니가 이번에 보내준 물건들이다.

 

장갑 10세트, 신랑 양말 10개, 내 양말 10개, 신랑 런닝 4장, 나무 도시락 2개, 신랑 책 1권(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칫솔 소독기, 자동 치약 짜개, 테이블 토크(인터뷰 게임), 애터미 남성 스킨 3개, 에스프레소 샷잔 1개, 김 커터 2개, 안경 2개, 미용실 집게핀 6개, 비녀 1개, USB 1개, 칼빵에도 구멍 나지 않는다는 고무장갑 4개, 드럼 레슨 책 2권, 피아노 반주 책 3권, 도시락 픽, 일회용 마스크, 주방 집게류, 미역 2 봉지, 다시마 2 봉지, 나이키 운동화 1켤레, 린넨 앞치마 2개

 

약간 작은 신발을 비닐봉지 넣어서 렌지에 살짝 돌리면 늘어난다고 해서 30초 돌렸는데 타버렸다. 무식이 화를 불렀다. 

최근 나이키 운동화 하나를 날려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본 형부가 마음이 쓰였는지 나이키 운동화를 보내줬다. 물론 디자인은 내가 골랐다. 마침 생일이 지나가서 형부가 생일 선물 겸 하나 골라보라고 했다. 히히, 형부는 3년 전 뉴질랜드에 방문했을 때도 내 운동화를 사줬었는데 이번에도 형부가 내 신발을 사줬다. 기분이 너무 좋고 감사했다. 

 

 

미역과 다시마는 이 집에서 거의 나만 먹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엄청난 행복감을 누리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미역과 다시마를 극혐하는 신랑 입장에서는 내가 왜 이렇게 기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렇게 우체국 EMS로 택배를 보내면 아무래도 보내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담이 클 것을 안다. 해외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의 삶이 녹록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언니는 막내 동생에게 한없이 퍼주고 있다. 아무래도 3개월 단위로 2번이나 여기서 지내다가 갔기 때문에 여기 물가나 사정을 조금 더 이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언니 성격에 아마도 언니 먹을 게 없어도 내 입에는 뭐라도 넣어줄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금방 태어났을 때부터 뽈뽈 기어 다니고 자박자박 걷기 시작하는 모든 순간에 언니가 나를 엎어 키웠다고 한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없지만, 들어서 안다. 내가 철이 없던 모든 순간에 언니는 나를 붙들었고 언니는 지금도 나를 키우고 있다.

 

언니는 현재 아이가 넷이다. 첫째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둘째는 유치원생이다. 셋째는 올 봄이면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작한다고 했고 넷째는 언니 뱃속에 있다. 언니는 현재 막달에 접어든 만삭 임산부이다. 이런 언니가 저 많은 물건을 다 받아서 우체국 EMS를 보낸 것이다 보니 더 많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막달이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가 이미 셋이나 있는 언니는 쉴 여유가 없다. 나는 아이 하나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언니는 참 대단하다. 

 

 

현관에서 바라본 하늘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닫히면서 꽤 오랜 시간 가족들과 만나지 못했다. 한국 국경이 열려 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일단 신랑이 올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고 오픈 워크 비자 3년 기간 안에 영주권 승부수를 봐야 한다. 우리 부부의 영주권 점수는 이미 차고 넘쳤지만, 딱 한 가지 영주권 기준 시급이 맞춰지지 않았는데 그 기준이 27불(21,411원)이다. 3년이라는 기간 안에 이 시급을 맞출 수 있도록 회사와 잘 협의를 해야 하며 보통 연봉 협상은 해가 바뀔 때 진행된다.

 

회사원인 신랑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시기는 이 나라의 모든 직장인들이 동시에 쉬는 12월 연말 휴가이다. 이때 보통 4주를 쉬니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데 만약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코로나 변이 같은) 큰게 터져서 뉴질랜드의 국경이 다시 막혀 버린다면 신랑은 회사에 복귀할 수가 없어진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정말 허무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의 시간동안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에 돌아갔다가 뉴질랜드로 다시 귀국을 못해 워크 비자를 잃었다. 현재까지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에 한해 국경이 열려 있으며 그마저도 추첨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선정된다. 선정된 사람은 국가에서 지정한 격리시설에서 격리 후 사회로 복귀한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올 4월을 시작으로 한국처럼 집에서 자가격리가 가능해지도록 바뀐다는 발표가 있었으며 올 연말, 뉴질랜드의 여행시즌이 시작되는 11월부터는 다시 관광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잘 진정되어 마음 편하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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