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름의 끝자락에 태풍이 거세게 와서 한 2주간 비가 끊임없이 왔다. 태풍을 직격탄으로 맞은 북섬은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고 한다. 치치는 원래 북섬보다 쌀쌀한 지역인데 비까지 계속 오니 순식간에 겨울이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날이 맑았다.
보통 매일 아침 햇볕에 도마를 소독하는 것으로 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지난 2주간 제대로 소독하지 못해서 약간 찝찝했으니 오늘은 두배로 진득하게 소독해야지. 주방 끝 통유리 쪽은 아침에 해가 뜰 때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는 자리인데 이곳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행주를 말리거나 주방 집기를 소독하는 데는 아주 좋다.
반면 아침 해가 들지 않는 자리에는 이제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비가 오래 왔던 영향도 있지만, 가을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교차가 심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창문에 습기가 차는 문제를 단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뉴질랜드의 어떤 집이든 같은 문제가 있으며 이중창이라도 물방울은 고인다. 이렇게 습기가 가득 차서 물방울이 생기면 유리에 얼룩지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창틀에 곰팡이가 생기게 되고 심각한 경우 창틀에 발린 실리콘이 손상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무 창틀이 아닌 것에 큰 감사를 느낀다. 나무창틀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그냥 방치하면 나중에 뒤처리 하는데 많은 노력과 돈이 들 수 있다. 또한 이런 습기로 인해 커튼(뉴질랜드 집은 대부분 암막 커튼이며 커튼 값이 꽤나 비싼 편)에 곰팡이가 생기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사 갈 때 본드 비(보증금) 무조건 떼인다고 보면 된다. 귀찮아도 미리미리 조심해서 물기 제거 제대로 하는 게 좋다. 벌써부터 이렇게 물이 고여서 큰일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정말 심각해질 텐데.. 습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집 안 환기를 제대로 끝낸 후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에 다녀왔다. 새벽에 출근하는 신랑이 차를 가지고 나가면 신랑이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나는 발이 묶인다. 그래서 요즘에는 열심히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가벼운 칸켄백을 신랑이 가지고 가서 신랑의 디스커버리 백팩을 사용했는데 상당히 무거웠다. 일단 가방 자체가 많이 무겁다.
생각보다 살게 많았는데 가방에 모두 잘 들어가긴 했지만,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내 어깨에 짊어졌던 모든 식재료를 나열했다. 1kg 참기름과 1kg 떡국떡, 고기만 1.5kg, 베이컨 1kg인데 이것만 해도 이미 5kg에 가까운 무게이다. 여기에 잡다하게 마늘, 버섯, 치아바타 빵, 로메인 상추, 김밥김 100장, 두부 등을 구입하니 무게가 더해져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로컬마트까지 거리는 3.7km, 자전거로 20분 거리였고 또 거기서 한인마트로 이동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뚜벅이보다는 자전거가 낫지만, 짐칸 없는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려니 어깨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힘들었다. (운동은 힘들게 했다.)
그래서 신랑이 곧장 바구니를 달아줬다. 볼트로 튼튼하게 조여서 식재료를 넉넉하게 담아도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물건이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끈이나 덮개를 준비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대만족이다.
그리고 요즘 매일 운전을 해서 신랑이 자신의 전동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있었는데 필요하면 타라고 안장 높이를 조절해줬다. 신랑 자전거는 내 자전거보다 조금 더 커서 약간 버거워보이기도 했지만, 안장을 최대한으로 낮추니 딱 탈만했다. 신랑은 지난 대학시절을 이 전동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신랑 학교는 시티 끝자락에 위치했는데 몇 년간 이 전동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기름값과 주차비를 제대로 아꼈다. 전동 자전거를 샀다면 굉장히 비쌌겠지만, 우리 똑띠 남편은 알리에서 구입한 배터리와 장비들을 가지고 직접 일반 자전거를 전동 자전거로 개조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메모리얼 에비뉴는 치치에서 가장 큰 도로중 하나인데, 차량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자전거를 타고 우회전할 때 안쪽 차도로 끼어드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위 사진에 보면 왼쪽에 보이는 갓길 라인이 자전거가 지나가는 라인이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뉴질랜드는 자동차와 자전거가 도로를 쉐어한다. 모든 자전거는 자동차와 동일한 도로법을 지키며 똑같은 차선을 좌회전, 우회전 수신호를 쓰며 다닌다.
이 자전거 라인을 따라 달리다가 사거리에 진입하면서 사라지는데 나는 이 사거리에 진입할 때 왼쪽 갓길에서 오른쪽 가장 안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해야한다. 근데 여기는 차가 끊임없이 오기도하고 시속 60km 도로라서 자전거 속도로 쉽게 끼어들기가 어렵다. 사실 더 차가 많았던 블랜하임 로드와 위그람 산업단지도 잘 다녔는데, 여긴 아직 익숙하지 않은가보다.
신랑 말로는 이 전동 자전거를 타면 차와 비슷한 속도로 차와 차 사이로 끼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자전거는 최대 시속 40km까지 나가는데 신랑은 실제로 40km 속도로 등하교를 했었다고 한다. 차가 많이 밀리는 시간에도 자전거 라인은 언제나 뚫려 있어서 오히려 차보다 더 빠르게 다녔다고 했는데... 말이 나온 김에 신랑 있을 때 집 앞에서 잠깐 타봤는데 시속 12km로 치고 나가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사실 일반 자전거를 탈 때도 이것보다는 더 빠르게 탔었는데, 내 발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꽤나 무서웠던 것 같다.
일단 장바구니는 달리지 않았지만 빠르게 다녀올 수 있는 전동 자전거와 아날로그식 페달 자전거지만 크고 든든한 장바구니가 있는 내 자전거 두 대를 모두 세워놨다. 신랑이 때에 따라서 골라 타라고 했다. 한번 그 빠르기와 편함의 맛을 보고 나면 전동 자전거만 고집하게될 것이라고 신랑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내가 전동 자전거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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