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시계를 확인하니 8시였습니다. 하지만 전 날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지라 너무 피곤했죠. 신랑도 저도 둘 다 피곤해서 결국 침대에서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가 9시가 돼서야 일어났습니다. 저도 저지만 아무래도 매일 새벽에 일하랴, 낮에는 공부하랴, 여행 오는 길 내내 운전까지 도맡아서 했던 신랑은 더 피곤했겠죠. 침대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너무 추웠습니다. 전기장판 덕에 따끈하게 잘 잤지만, 확실히 실내 온도는 정말 차갑더라고요. 아무래도 빙하지대와 가까운 곳이라 더 추운 것 같았습니다. 뽀얗게 입김이 나오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주방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아침 메뉴는 오믈렛입니다. 달걀 3개를 풀어 우유를 조금 넣고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한 다음 베이컨, 시금치, 양송이 버섯을 넣었습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브랙퍼스트 메뉴인데요. 손님들한테 매번 나가던 음식을 제가 먹으려고 준비를 하니 뭔가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오믈렛을 만드는 동안 접시는 전자레인지에 3분간 돌려서 데우고 한편에서는 식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바삭하게 구웠습니다. 오믈렛이 거의 다 완성되었을 때 곧 아침이 완성되니 이제 일어나라고 신랑을 불렀습니다.
동시에 커피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카포트에 원두를 채우고 따뜻한 물을 넣어 불 위에 올렸습니다. 크레마가 아주 잘 나오더라고요.
짜잔, 우리 두사람의 아침을 위해 준비한 오믈렛입니다. 비록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맛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식탁으로 가져갔습니다. 오믈렛에 토마토 랠리쉬가 빠질 수 없죠. 아주 듬뿍 얹어서 먹었어요. 오믈렛에 치즈가 들어가면 더 좋았을 텐데, 치즈를 깜박하고 준비하지 못했어요. 다음 기회에...
오믈렛을 식탁으로 옮기는 사이 커피가 다 추출되었습니다. 커피포트에 끓인 물을 컵에 붓고 모카포트 에스프레소를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었습니다. 작은 유닛에 공기도 차가웠지만, 신랑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아침 시간이 얼마나 좋던지요. 아주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아주 맑은 하늘을 기대하고 커튼을 열었지만, 온 세상은 뿌옇고 하얀 안개로 가득했습니다. 이런 모습도 나름 운치가 있더라고요.
'음.. 분명 해는 중천에 떴는데, 왜 아직까지 이렇게 안개가 심하지?'
'습기가 너무 심각해서 햇빛으로 모두 증발시키지 못한 게 아닐까?'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서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방문할 곳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클레이 클리프'입니다. 사실 계획대로라면 오전 8시에 출발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피곤하고 게으르고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저희는 잠과 휴식을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은 10시 20분쯤... 세수하고 머리는 감지도 않은 채 모자를 눌러쓰고 출발했죠.
저희 숙소는 4번 유닛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느껴지겠지만, 정말 작고 아담한 컨테이너입니다. 컨테이너 안에 작은 집을 만들어놨죠. 한국의 원룸도 주방과 방은 분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여긴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완전한 하나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가스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한국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린나이를 여기서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확실히 뜨거운 물은 잘 나오더군요.
마을에서 벗어나는 동안 이렇게 하얀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온통 서리로 가득해서 나무도 풀도 하얗고 안개가 얼마나 심각한지 도로 위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안개가 자욱했던 트와이젤을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확연하게 안개 지역과 아닌 지역이 갈리는 모습은 또 처음 본 것 같네요. 세상 맑고 파란 하늘이 등장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살짝 남아 있는 안개가 보이지만, 이렇게 날씨가 좋았습니다. 같은 하늘인 게 참 신기했습니다.
파랗고 파란 하늘을 보며 눈 덮인 산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 참 좋았어요. '경치 참 좋다. 슈퍼는 멀지만, 여기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장은 한 번에 많이 보면 되니까 2주나 3주에 한번 보고... 한국 음식이 많이 먹고 싶으면 3시간쯤 달려서 퀸스타운에 있는 코스코 가면 되고...'
경치가 좋으니까 별 말을 다 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이런 곳에 살면 참 불편할 텐데, 너무 예쁘고 좋으니까 그냥 살고 싶더라고요. 참, 클레이 클리프는 구글 지도에 찍으면 안내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비포장 도로인 게 약간 아쉽지만...
클레이 클리프에 진입할 때 만나게 되는 싸인입니다. 이 곳은 사유지로 개인으로 방문하는 일반 차량은 5불, 단체로 오는 버스는 20불을 내고 들어갑니다.
요금 안내문을 지나면 이렇게 길이 막혀 있고 정면에는 CCTV와 오른쪽에는 조금 허접하게 매직으로 적은 'PAY HERE'이 있습니다. 이게 돈통인데요. 여기다가 그냥 돈을 훅 넣고 지나가면 됩니다. 아무도 검사하진 않지만... 양심껏 내는 거죠. 뉴질랜드에서는 이렇게 양심껏 돈 내는 곳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막힌 입구의 펜스는 이렇게 간단한 고리로 잠겨 있습니다. 누가 열어주냐고요? 음... 운전가가 열거나? 보조석에 앉은 사람이 엽니다. 저희는 신랑이 운전을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걸쇠를 풀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면 다시 이 문을 닫고 걸쇠를 걸어 문단속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걸쇠를 걸어 통행로를 차단시키는 것은 트레킹 코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알아서 문을 열고 지나가면 또 걸쇠를 걸어 닫습니다. 제가 바쁘게 걸쇠를 닫고 다시 차에 타니 신랑이 하는 말...
'뒤에 차 오는데 열어주지 왜'
'내가 문지기야?'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클레이 클리프의 절경이 한 눈에 보이네요. 오는 내내 차 한 대를 못 봤는데, 도착하니 생각보다 차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관광버스도 와있네요.
아직 햇빛이 들지 않은 곳곳에 눈꽃이 가득했고 이렇게 서리를 맞아 하얗게 물든 열매와 가지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추웠어요. 내가 왜 패딩조끼를 입었을까, 롱 패딩을 입었어야 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숙소에 롱패를 두고 왔나..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클레이 클리프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길에도 온통 진흙, 모든 곳이 진흙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이 만지고 노는 클레이와 어릴 때 제가 가지고 놀았던 진짜 진흙 점토가 생각났죠. 겨울이라 이곳의 진흙 또한 꽁꽁 얼어있었는데요. 축축한 진흙이 얼어서 아주 미끄러웠습니다.
어디 중동의 사막에 있는 어떤 곳에 온 것만 같은 그런... 아주 색달랐어요. 낙타가 지나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쪽빛이 들어온 모습이 너무 예쁘죠.
클레이 클리프를 아주 가깝게 촬영한 모습입니다. 진짜 진흙에 돌이 콕콕 박혀있었어요. 손으로 누르면 단단하지만 살짝 말랑한 느낌? 이 진흙에 박힌 돌이 여기저기서 떨어지고 있었는데요. 낙석에 주의하는 것이 좋겠죠.
와, 자칫하다가는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될 수도 있겠다. 돌무덤 ㅋㅋ 그런 말을 막 하면서 다녔습니다. 실제로 돌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도 두번 정도 봤는데요. 나중에라도 애기 데리고는 못 오겠다 싶었죠. 아이들 데려오시려면 안전모 씌워서 데리고 오시는 게...
바람과 비, 눈 등 갖가지 자연현상으로 이곳이 깎이고 깎여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르내려서 이곳에 더 많이 훼손되고 있지는 않나 싶기도 했어요. 물론.. 방문한 저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 저희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저희 발에 치여 굴러 떨어지는 돌도 많았거든요.
조금 더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길이 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저희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주 짧았습니다. 뭔가 클레이 클리프의 저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죠.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했답니다. 겨울도 나름 운치는 있지만, 안전을 생각한다면 여긴 여름에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풀도 예쁘고
오미.. 다 내려와서 주차장에서 바라본 클레이 클리프는 왜 저리 예쁘고 난리인지... 확실히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조금 멀리서 만나는 클레이 클리프가 더 예뻤습니다. 아주 멋지고... 한참을 바라봤어요. 어떤 사람들은 여기 캠핑카를 세우고 저 모습을 바라보며 점심을 준비하더라고요. 내 다음에는 꼭 캠핑카를 빌려서 오리라. 작정을 하며 차에 탔습니다.
다시 트와이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너무 예쁜 설산이 보입니다. 저 멀리...
어머.. 트와이젤이 가까워지니 또 안개 숲이 보입니다. 저희 숙소가 있는 트와이젤은 참 좋은 동네인데요. 대체 왜 저기만 저렇게 안개가 자욱한지.. 이해가 잘...
어쨌든 들어갑니다. 안갯속으로... 약간 무섭기도 하고 ^^;; 넷플릭스 드라마 미스트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아침에 미리 준비했던 밥이 아주 맛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라이스 쿠커는 사실 처음 사용해봤는데요. 냄비밥을 하면 했지, 여기 스타일은 잘 써보지 않아서... 근데 생각보다 아주 밥 맛이 좋더라고요. 물론 보온에는 상당히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밥이 마르거든요.. 아주 딱딱하게
이렇게 맛있게 완성된 밥을 가지고 저는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누룽지가 하얗고 노란색이 아니라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있는 쌀이 이것뿐이라..
오늘 점심 메뉴는 누룽지 참깨라면입니다. 한국에서는 누룽지가 애초에 들어가 있는 '누룽지 참깨라면' 제품이 있다고 하던데요. 여긴 아직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는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바닥에 누룽지를 깔고 라면을 올리고 수프와 에그 블록을 쏙 넣었는데요. 에그 블록이 너무 작아진 것 같다고 신랑이 투덜거렸습니다.
음,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누룽지를 말아먹나, 밥을 말아먹나 어차피 그 밥이 그 밥 아닌가라는 생각을 분명히 했었는데요. 먹고 나니 그 생각이 쏙 기어들어갔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확실히 누룽지를 넣어서 그런지 밥 아주 식감이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누룽지 양을 조금 더 늘려서 죽처럼 만들어 먹어봐야겠어요. 이번에는 누룽지가 너무 적게 들어가서 물이 많았다는 신랑의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좋은 것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니 기분은 그냥 막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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