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갑작스러운 복통과 함께 이틀 밤낮을 고생하다가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속이 조금 더부룩했었는데 갈수록 체기가 심해지더니 저녁에는 먹은 것을 다 토했습니다. 배에 가스가 빵빵하게 찬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제대로 체했나 보다, 급체가 진짜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이 날 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잤습니다. 아침까지 통증에 시달리느라 밤을 꼬박 새웠고 도저히 출근을 못할 정도로 배가 아팠습니다. 결국 카페에는 일을 못 갈 것 같다는 연락을 드렸고 집에서 진통제를 먹어가며 체기가 내려가길 바랐죠.
배에 가스가 많이 차면 심각한 복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아, 그러면 좀 걸을까? 힘들어도 걷다보면 좀 내려가겠지?'라는 생각에 신랑에게 '여보, 나 좀 걷고 올게!'라고 말하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때는 가을이라 낙엽이 매우 아름다웠는데요. 좋은 날씨에 좀 걸으니 몸도 마음도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지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늘 신랑과 함께 산책하던 곳이라 혼자 걸으니 조금 허전했지만, 신랑은 공부하느라 바쁘니 어쩔 수 없었죠.
집 앞 공원에 나오니 친정 식구들 생각이 무척 많이 나더라고요. 아프니까 서럽기도 하고? 여기서 엄마랑 언니, 조카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나서 잠시 추억에 잠겼답니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었어요.
도토리가 얼마나 많이 떨어졌던지요. 이걸 보니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어요. 코로나 이전에 이곳에 오셨던 엄마가 여기서 도토리를 잔뜩 주워서 도토리 묵을 만들어 주셨었죠. 가루로 만든 묵이랑은 식감도 맛도 다르다고 하시며 손수 손질하고 갈아서 만들어 주셨었는데... 엄마 정성은 따라갈 수가 없죠. 에휴, 몸 좀 좋아지면 나도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먹으며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근처 마트 '뉴월드'까지 걸으면 딱 30분 정도 걸리는데요. 왕복으로다가 1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며 가며 단풍 구경, 남의 집 가든에 핀 꽃 구경을 하면서 즐겁게 걸었던 것 같아요. 물론 복통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 그래도 걸어야 체기가 내려갈 것이라 생각하며 아픈 걸 참고 걸었던 거죠.
그리고 그 날 저녁 8시쯤... 점점 더 심각해지는 복통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신랑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도저히 못 참겠어. 너무 아파...' 뉴질랜드의 느리고 느린 의료 시스템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사실 어지간하면 병원에 가지 않는 편인데요. 진통제가 듣지 않을 정도로 아프니 선택지가 없더라고요. 이러다 죽겠다 싶은 마음이었어요.
치치 병원 응급실로 바로 갈까, 고민도 했지만 지난번에 4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에 일단 밤에도 진료를 보는 사설 병원인 24시간 써저리 페가수스로 향했습니다. 보통 GP는 예약하고 가야 하지만, 여긴 바로 가서 접수하고 진료를 보면 됩니다. 물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치치 병원 응급실보다는 덜 기다리는 편이었기에 곧장 여기로 갔죠. 여기는 그래도 한 2시간만 기다리면 의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사람이 적었어요. 너무 아프지만, 진통제는 더이상 듣지 않았고 저는 혼자 끙끙 앓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1시간 4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의사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진료실로 들어갔고 간단한 진료를 한 결과 맹장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레터를 써줄 테니 치치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죠. '아, 처음부터 그냥 치치 병원으로 갈걸... 괜히 여기로 왔네'라는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응급실은 다행히 평일 밤이라 그런지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보다 사람이 적었습니다. 곧장 접수를 하고 정말 감사하게도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의사가 제 이름을 불렀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리고 곧바로 입원했습니다. 수액을 달고 이런 저런 검사를 계속했죠. 피를 얼마나 뽑아갔는지 모르겠네요 ^^;; 근데 너무 아프니까 바늘로 찌르는 건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 고통의 정도의 차이를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정도의 아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 입원실에 들어왔고 의사가 곧 올 거라는 말에 신랑도 함께 기다렸지만,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의사가 오지 않았답니다. 아픈 상태로 방치되었지만? 강력한 진통제를 주셔서 다행히 통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 영어는 워낙 어렵다보니 저 혼자 있는 게 불안했는데요. 간호사에게 의사 만날 때 신랑이 필요할 것 같다고 아침 회진 때 함께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신랑은 집으로 돌아갔죠. 아, 뉴질랜드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병실에서 잠을 자거나 밤을 새우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이 온전히 케어하며 보통 저녁 8시가 넘으면 보호자나 방문객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죠. 뭐, 저희는 입원 자체를 밤 11시에 했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이었고요.
날이 밝았을 때 제 침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입니다. 치치 병원은 헤글리 파크 앞이라 뷰는 참 좋습니다. 의사를 만났을 때 제 통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명치 쪽에서 통증이 심하다가 배 아래 오른쪽 부위로 통증이 옮겨갔다고 이야기했더니 이건 뭐, 완전 책에 나오는 맹장의 정석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신랑도 이 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받았었는데요.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런 것도 닮네요.
오전 10시 쯤 수술실로 이동했어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수술방 바로 앞에서 제 수술에 들어가는 모든 전문의들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반갑다고 인사하며 저를 맞이하는데 저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네요. 수술실은 아주 차가웠습니다. 호흡기를 통해 마취가스를 들이마시며 저는 잠이 들었던 것 같네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막 흔들어 깨우더라고요. 아직 마취가 제대로 깨지 않은 상태라 저는 계속 눈이 감겼는데요. 간호사가 자꾸만 이름을 부르면서 '물 먹을래? 아니면 아이스크림 먹을래?'라고 묻더군요.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몽롱하게 누워 있으니 자꾸만 이름을 부르며 물과 아이스크림을 권했습니다.
수술 직후에 아이스크림은 뭔가 이상해서 물을 달라고 했더니 물을 주더군요. 하지만 곧 다시 '아이스크림 먹을래?'라고 물어봤습니다. 3번 이상 물어보니 이걸 내가 먹어야 하는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이스크림 주세요'라고 했죠. 간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제 입에 물려줬습니다. 확실히 아이스크림이 입에 들어가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긴 했어요 ^^;;
나중에 여기 친구들에게 들었는데 출산하고 나오는 산모들에게도 모두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려준다고 합니다. 문화충격이죠.
제가 수술받는 동안 병실에서 열심히 과제를 했던 남편의 흔적, 와이프의 갑작스러운 맹장 수술로 신랑은 학교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결석 처리가 되지 않아요.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제 담당 간호사가 물어 봅니다. '킴, 샌드위치 먹을래?'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신랑이 먹을 것 같아서 달라고 했어요. 아마 점심으로 나갔었던 샌드위치 같은데요. 수술 직후에 도저히 이건 못 먹겠더라고요. 근데 참 신기하죠? 맹장 수술인데 수술 직후에 바로 음식을 먹는다는 게요. 처음에는 저희도 엄청난 문화충격이었지만, 저희 둘 사이에 뉴질랜드에서 맹장수술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익숙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지인이 만들어 문 앞까지 배달해주신 닭죽입니다. 입원기간 동안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바로 이거였어요. 신랑이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저는 닭죽을 먹었답니다. 물론 입맛이 없었기에 정말 조금... 먹었어요 ^^;;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또 누가 들어와서 물어봅니다. '킴, 커피 마실래?' 와, 커피는 당기더라고요. 뷰가 좋아서 그런지 커피 맛은 별로 였지만? 기분은 나름 괜찮았어요.
첫날 밤 저녁으로 나온 돼지고기 요리입니다. 음식의 이름은 '캡시콤 포크'였고 메쉬드 포테이토랑 냉동야채 삶은 것이 함께 나왔어요. 그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탄산젤리가 디저트로 나왔답니다. 수술한 당일에 먹는 환자 음식이 한국과는 참 다르죠?
저는 21호 병실에 있었고 제 담당 간호사는 켈리였어요. 1인실이어서 아주 편했죠.
병실 참 아늑하죠? 치치 병원에서는 이곳 응급실 병동이 신축 건물이라 가장 깨끗하고 좋은 것 같아요. 기존 건물은 좀 어둡고 칙칙했는데, 여긴 아주 산뜻하고 분위기가 밝았던 것 같아요.
밤새 2시간 간격으로 간호사가 들어와서 안부를 묻고 약을 먹이고 혈압을 재고 온도를 체크했어요. 분명히 '잘 쉬어~'라고 말하고 나갔는데 잠들만하면 들어와서 체크한다고 저를 깨우더라고요. 아프니까 정신도 없고 말할 힘도 없고.. 앉지도 못하겠고 서는 건 더 힘들고.. 그랬네요.
다음 날 아침으로 나온 토스트와 포리지(오트밀 죽)입니다. 키위들이 가장 많이 먹는 전형적인 아침 식사라고 볼 수 있겠네요. ㄴ
짭조롬하고 고소한 것이 먹을만했어요.
호잇, 둘이 함께 나란히 앉아 창밖을 보며 멍 때렸습니다. 학교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제 간호까지.. 이틀 밤을 제대로 잠도 못 잔 신랑도 매우 힘들었죠. 정말 고생했어요.
저녁 식사로 나온 소고기 샐러드에요. 요거 완전 완전 제 스타일! 진짜 맛있었어요. 입맛이 좀 돌아와서 그럴 수도 있고...?
커스터드 크림과 야채 스프가 함께 나왔어요. 수프는 진짜 밍밍해서 물처럼 마실 수 있었고 커스터드 크림은 많이 달았어요. 키위들은 저 크림에 갖은 과일 잔뜩 넣어서 잘 먹는 것 같더라고요. 키위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도 디저트로 커스터드 크림을 얹은 과일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이 저녁을 마지막으로 저는 퇴원했습니다. 수술한 다음 날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앞에는 선물이 있었어요. 지인이 만들어주신 마카다미아 죽(약간 타락죽 느낌)과 치치 유명 베이커리 '코펜하겐'의 치즈케이크이었어요. 그 외에도 많은 병문안 선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는데요. 주변 분들이 모두들 마음 써주셔서 제가 더 잘 나았던 것 같습니다. 카페에는 수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씩리브'를 냈었는데요. 덕분에 잘 쉬면서 주급도 받아서 저는 좋았습니다.
벌써 2달 전 이야기입니다. 벌써 제가 맹장수술한지 2달이 지났네요. 집에서 2주간 잘 쉬고 요양하다가 3주 차에는 다시 카페로 일을 나갔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했으니 통증은 계속 있었는데요. 서서히 좋아지더니 한 달이 지났을 때쯤에는 누가 수술 부위를 때리지만 않으면 안 아플 정도가 되었답니다. 뭐, 지금은 완전히 잘 나아서 상처 부위를 조물조물 만져도 전혀 아프지 않아요.
이제 맹장없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맹장 조심하세요. 이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저처럼 체한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복통이 심하면 병원에 곧장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아, 다들 뉴질랜드에서 맹장 수술 비용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시죠? 사실 아직 제 병원비는 청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서 병원에서 연락이 와야 저희도 보험사에 연락을 해서 일처리를 하는데요. 왜 이렇게까지 늦어지는지 잘 모르겠네요. ^^;; 어쨌든 보험을 들어왔었기 때문에 제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약 100불 정도고요. 똑같은 수술을 받았던 신랑 병원비를 보면 대략 1만 3천 불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한국 돈으로 아마 1,00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죠? 한국에서는 맹장수술 비용이 얼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렇게 비싸지는 않겠죠. 보험 없었다면 아마 저희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 다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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