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 홀리데이 파크에서 보낸 첫날밤은 상당히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도 추운 쌀쌀한 날씨를 자랑하는 퀸스타운이지만, 그래도 밤에 핫팩이 필요할 정도로 춥지는 않았습니다. 비교적 포근했던 밤공기 덕에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오리털 침낭에서 꿀잠 잤습니다.
한 겨울에는 오리털 침낭 안에서 자더라도 아래 위로 두껍게 입고 롱패팅 점퍼까지 꽁꽁 싸서 입은 뒤 핫팩도 끌어안아야 겨우 잠들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겨울 캠핑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여름 캠핑은 잘 때는 좋지만, 낮에 텐트에서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정말 덥거든요.
캠핑장에서 잠을 자면 참 좋은게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대부분 새벽같이 일어나 장비를 챙기고 식사를 하기 때문에 일단 분위기 자체가 부산스럽습니다. 게다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워낙 커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죠. 예전에는 핸드드립을 챙기기도 했었지만, 사실 간단하게 먹기에는 모카포트가 최고입니다. 캠핑장에서는 이것만큼 좋은 게 잘 없죠.
한국에서 가져왔던 코베아 버너는 상당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때가 타고 볼품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쓰임새가 좋아서 꾸준하게 사용하고 있죠. 그래도 뉴질랜드 캠핑용품 전문점에서는 코베아가 질 좋다고 알려진 좋은 브랜드입니다. 한국보다 훨씬 비싼 바가지 요금으로 판매되고 있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오전 내내 아주 꾸준하게 쏟아졌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보통 맞고 다녀도 괜찮을 정도의 가랑비가 자주 내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상당히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졌습니다. 텐트에서 듣는 빗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 들어도 참 좋은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히히 이런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는 더 맛이 좋을 수 밖에 없죠. 정말 맛있게 먹었던 모닝커피
매년 여름이면 뉴질랜드는 온갖 맛있는 과일로 가득해지는데요. 그중 단연 으뜸은 체리입니다. 사실 뉴질랜드는 제스프리 키위로 유명한 키위의 나라지만, 키위는 모든 계절에 마트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체리는 딱 이 시즌에만 판매가 됩니다. 그리고 정말 달고 맛있고 싸게 판매되죠.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정말 맛있는 체리는 물맛이 가득한 단맛 없는 체리였고 가격은 비싸기만 했습니다. 여러모로 당황스러워서 기사를 찾아봤더니 올해 쏟아진 폭우가 체리의 맛에 영향을 줬고 코로나 19로 인해 국경이 닫히고 워홀러들이 들어오지 못하자 체리를 수확할 일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리의 절반도 수확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피해가 컸던 것 같습니다. 언제쯤 다시 워홀러들이 들어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뒹굴뒹굴 텐트에서 구르고 멍 때리며 시간이 잘만 갔습니다. 점심으로는 치즈 소시지와 양파, 마늘, 올리브 오일, 치즈 잔뜩 넣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어요. 베이컨과 버섯, 청경채를 넣으면 더 맛있지만, 있는 재료로 만족했습니다.
저녁 8시쯤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지금이라도 나가볼까? 어차피 9시 넘어야 해 지니까... 어때?'
'그래, 나갈 거면 지금 바로 나가자!'
걸어서 5분이면 퀸스타운 메인 거리로 나갈 수 있었기에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귀한 휴일인데 이렇게 하루가 그냥 다 가는 건 너무 아쉬웠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쳐났습니다. 원래 저 줄을 타고 건너갈 수 있는 곳인데, 줄을 잡을 수도 없더라고요.
돌아 돌아 건너편 놀이터로 갔지요. 미끄럼틀이 워낙 길어서 타고 싶었는데, 다 젖어서 탈 수가 없었어요.
놀이터를 지나 조금 더 걷기 시작하니 호수를 따라 걷는 산책로가 나왔습니다. 자박자박, 우리 발소리를 들으며 걷는 이 길이 참 상쾌하고 좋았습니다. 찰싹거리는 물소리도 좋고 지저귀는 새소리도 좋았어요.
짧은 산책로의 끝이 보입니다. 저기 멀리 벤치에 앉은 사람들도 보였는데요. 저 사람들이 지금 딱 떠나면 우리가 앉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네요. ^^;;
이쁘게 서있는 우리 신랑 몰래몰래 하나씩 찍어봅니다. 늘 본인의 초상권을 말하기에 앞모습은 찍을 수 없지만... 뒷모습 몰카는 종종..ㅎㅎ
퀸스타운에 왔더면 1일 1퍼그는 국룰이죠. 코로나 덕에 관광객이 없어서 확실히 줄은 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사라지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편안하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 된 것 같네요. 그래도 장사를 해야 이 사람들도 먹고 살 텐데... 어서 국경이 열리는 날이 오면 좋겠다 싶습니다.
밤 9시가 지나서 텐트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늦게 져서 아직 상당히 환한 것 같네요.
조금 늦은 저녁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어요. 파스타에 넣어 먹고 남았던 치즈까지 야무지게 올려서 먹었죠.
야식은 역시 퍼그죠. 아까 거리로 나갔을 때 구입했던 퍼그 버거와 칩스입니다. 버거 잘라서 나눠 먹으면서 신랑이랑 같이 드라마도 한 편 보고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눴습니다. 그리고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네요.
신랑과 단 둘이서 함께 하는 여행은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이라 정말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평소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왔다면 아마도 그 사람들을 챙기느라 상당히 정신없었겠죠. 아기 없을 때 둘만의 여행 많이 다녀야 하는데.. 너무 우리 둘에게 소홀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우리만의 여행이 이렇게 즐겁다는 거 새삼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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