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대로 된 배추가 나왔습니다. 작년 10월(봄)부터 지금까지 배추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간혹 보이긴 해도 가격 부담이 너무 컸었죠. 게다가 크기는 또 얼마나 작은지요. 오히려 사 먹는 게 더 저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한동안 한국 마트에서 판매하는 청정원 김치나 농일김치를 번갈아 먹었던 것 같아요. 사 먹는 김치도 나름 먹을만한데 단점이 있다면 빨리 무른다는 것. 그래서 실한 배추가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실한 배추가 나왔네요.
▲ 타뇨의 뉴질랜드 이야기, 유투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우리 만식이 학교 드롭하고 수영장에 들러 아쿠아 조깅 1 시간하고 집에 오는 길에 야채가게 'Growers Direct Market'에 잠시 들렀어요. 요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레몬청 재료인 레몬을 구입하러 갔었죠. 한데 거기서 우연히 참 반가운 '배추'를 만났습니다.
사이즈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제 손을 살짝 대봤어요. $4.99(3,690원)이면 김장철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인가요? 한국에서 배추를 안 사본 지 벌써 4년 째라 가격을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가장 큰 놈으로 4포기 챙겼습니다.
큰 마트나 아시안 마트에서도 야채를 구입할 수 있지만 이 쪽 지역에서 가장 신선하고 질이 좋으면서 저렴한 야채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곳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이 곳에서 레몬, 깐 마늘, 토마토, 바나나, 아보카도, 오이 등을 구입했어요. 가게 이름처럼 농부들이 중간 마진 남기는 유통업자를 끼지 않고 마트로 바로 보내는 물건이라서 조금 더 저렴하게 판매가 가능한 것 같네요.
덩치가 엄청 크던 배추는 겉잎을 떼고 나니 생각보다는 알이 조금 작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봤던 배추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속도 탄탄하게 잘 차서 보고 있자니 제 마음이 다 든든하더라고요. 엄마는 언제나 저 초록색 잎이 김치를 담아 놓으면 더 맛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하얀 배추가 좋습니다. 초록색 거친 겉잎들은 모두 삶아서 우거지로 비축하려고 합니다. 마침 우거지도 똑 떨어졌거든요.
배추 절이기
배추 1포기 : 물 10컵 : 소금 1컵
처음에 뉴질랜드 왔을 때는 한국 마트에서 판매하는 귀하고 비싼 간수 뺀 굵은소금을 사용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김치 담을 때는 무조건 굵은소금, 게다가 소금은 무조건 간수 뺀 거, 그래야 쓴 맛이 나지 않는다." 였으니까요. 한데 너무 비싼 거예요. 한 3년은 비싸도 무조건 간수 뺀 굵은소금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던 중 현지에서 오래 사신 아줌마들이 굵은 소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궁금해서 현지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기본 소금을 사용해봤습니다. 이 곳에서는 '테이블 솔트'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 소금은 첨가물이 없는 그냥 일반 가루 소금인데 정말 정말 저렴합니다.
'이 소금으로 배추 절이면 배추 망하는 거 아닐까?'
긴가민가했지만, 망하든 잘되든 일단 한 번 만들어봐야 궁금한 걸 해소할 수 있으니까 용기 내서 한 번 절여봤지요. 근데 이거 정말 좋더라고요. 가격도 저렴한데 절여진 배추 맛도 좋았습니다. 굵은소금으로 만들었던 때랑 사실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막입인지^^;; 외국에 계신 분들 중에 혹시라도 저처럼 굵은 소금 가격에 부담을 느끼셨다면, 현지 소금으로 시도해보세요.
김치 양념 만들기(6포기 기준)
풀죽(차가운 물 500ml + 밀가루 5큰술 = 잘 섞어가며 가열하면 죽처럼 변해요)
다진 마늘 250g, 고춧가루 650g, 까나리액젓 300g, 물엿 500g, 갈아서 준비한 사과 2개, 미원 1큰술(선택), 물 2컵
+
김치 소로 넣을 무 1개(선택)
무는 채 썰어서 소금 뿌려서 잠시 절여주세요.
+
김치 양념은 만들어서 바로 사용하지 마시고 무조건 냉장고에 넣어서 반나절 이상 숙성시킨 다음 사용하세요.
그래야 고춧가루 풋내도 안 나고 맛도 더 좋습니다.
풀죽은 쌀가루나 밥알로 만드는게 낫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본인의 취향에 맞게 풀죽 만들어 넣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준비한 배추는 4포기인데, 왜 양념은 6포기 기준으로 만드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보통 이렇게 넉넉하게 양념을 만드는 편인데요. 이렇게 준비하면 양념은 무조건 남습니다. 저는 남은 양념을 통에서 넣어서 냉장고와 냉동고에 보관하고 '만능 양념'으로 사용합니다.
김치 양념은 돼지껍데기두루치기, 제육볶음, 순대볶음, 순두부찌개, 육개장, 뼈해장국, 감자탕 등 넣으면 찰떡 같이 제 맛을 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치양념은 언제나 냉동실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활용해보세요. 제가 생각하는 만능 양념은 김치 양념입니다.
저녁에 배추를 절이고 다음날 오전에 건졌습니다. 차가운 물에 3번을 헹구고 물을 뺄만한 공간을 발견하지 못해서 식기 건조대에 받혀서 물을 뺐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좋은 자리더라고요. 얇게 썰어 준비한 무채는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절여지기 때문에 전 날 미리 작업할 일이 없습니다. 많이 급하면 딱히 절이지 않고 바로 양념에 넣어도 괜찮아요. 여기에 쪽파도 좀 들어가면 좋았을 텐데, 파가 흉년이라...
김치 4포기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김치가 숨 쉬면서 물도 나오고 조금은 부풀어 오를 것 같아서 공간을 조금 여유롭게 잡았답니다. 집에 김치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4포기만 담아도 냉장고가 꽉 찹니다. 뭐, 그래도 이거 순식간에 뚝딱 해치울 것 같아서 걱정은 없네요.
배추 겉잎 따서 세척한 뒤 푹 삶고 찢어서 준비한 우거지는 냉동실에 차곡차곡 잘 쌓였습니다. 삶고 찢는 것은 괜찮은데, 물기를 짜는 게 손목이 너무 아파서 신랑한테 부탁을 했지요.
'여보, 나 이거 물기 좀 짜줘'
매번 야채를 삶아서 물기를 짤 일이 있으면 무조건 신랑 몫입니다. 지난 세월 카페를 운영하면서 나간 것은 손목뿐만이 아니죠. 여기저기 종합병원입니다. 그래도 제 부족한 부분 기쁨으로 채워주는 신랑이 있어서 오늘이 행복하고 감사하네요.
매번 같은 레시피로 똑같이 계량해서 만드는 김치지만, 이번에는 유독 더 빛나고 고운 김치입니다. 그리고 맛도 참 좋았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감탄사를 어찌나 쏟아내는지, 제가 만들고도 어깨가 들썩이더군요. 하하, 여러모로 뿌듯함이 있네요.
실과 바늘처럼 김장김치와 수육은 한 몸이죠. 덕분에 저희 식구들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야들아, 우리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날 정해서 '패밀리 디너 데이' 이런 거 할래?'
이렇게 말했던 것이 어제였는데, 오늘 우리 모두 함께 같은 음식을 나누며 패밀리 디너를 즐겼네요. 함께 사는 플랫 친구들도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밥을 해 먹지만, 각자 알아서 해 먹죠. 함께 웃고 떠들며 식사하지만, 각자의 것을 먹습니다. 뭐, 맛있는 게 있으면 간간히 조금씩 덜어주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처럼 함께 먹는 밥상은 아닙니다.
서로가 가족의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 함께 모였는데요. 이렇게 가끔이라도 약속을 잡아서 같이 맛있는 거 해 먹는 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가족이 별거 있나요. 오늘 나와 함께 머물고 먹고 마시는 이가 우리의 가족이죠. 타뇨의 김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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