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라는 짧은 시간 오빠네 가족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첫 주는 여행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 번째 주는 묵은 피로에 시달리다 날이 다 간 것 같아요. 여행 첫날부터 오빠가 했던 말은 "여기 뉴질랜드 소방서에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였어요.
저희 오빠는 경북에서 소방특수구조대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 소방관인데요. 화학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장비를 쓰는지 등 궁금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생활영어도 아닌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어야 할 상황이 뻔해서 신랑에게 곧바로 말했었죠. "여보, 오빠가 여기 소방서에 한 번 가보자고 그러네. 당신이 오빠가 물어보고 싶은 거 미리 알아뒀다가 한 번 같이 가자"라고요.
뉴질랜드 여행 2일 차에 퀸스타운 소방서를 잠깐 방문했었지만 소방관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라 안에서 식사하시거나 나가서 점심을 드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곧바로 저희는 여행 일정에 맞춰 이동을 했었답니다.
사실 이 때 오빠는 아주 아쉬워했었지만, 신랑과 저는 아쉬움과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막상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좀 막막했었거든요. 저희 영어가 아주 능통하면 이런 부담 없겠지만, 저희도 생활영어 수준이라.. 뭐, 그래도 신랑은 대학공부를 하니 저보다는 훨씬 낫지만요.
그렇게 어영부영 어쩌다보니 2주가 모두 지나가고 오빠가 떠나기 전 날 아침이 되었어요. 이제 내일 아침이면 떠나야 하는데 아직도 소방서를 못 갔으니 오빠도 실망감이 약간 있는 듯했고 저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빠한테 "오빠, 오늘 나가는 길에 소방서 들러보자" 라고 말했죠. 하지만 마지막 날 일정에 밀리고 아이들 신경 쓰다 보니 결국 소방서에 가지도 못한 채 오후 5시가 되었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거 그냥 너 하던지.. 줄 사람 있으면 누구 주던지.."라고 말하며 오빠가 뭔가를 꺼내들었어요. 뉴질랜드 소방서에 가면 뉴질랜드 소방관과 '소방관 패치'를 교환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었던 거였죠. 10개가 넘는 소방관 패치를 종류별로 가지고 왔었는데 사진으로 찍어둔 것은 국기밖에 없네요. 소방특수구조대라고 적힌 것도 있었고 각종 다양한 무늬의 패치가 많았어요. 이 패치들을 받으니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어요 ^^;; 개발새발 말을 잘하든 못하든, 어떻게든 소방서에 갔었어야 했다는 후회도 막 밀려왔죠.
이미 오후 6시였지만 소방대원들은 보통 교대 근무하니까 누구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구글에 가까운 소방서를 검색했어요. 소방서 전화번호도 함께 있더라고요. 뉴질랜드에서는 소방서, 경찰서, 구급차 모두 111에 신고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신고가 아니었기에... ^^
전화를 걸면 뭐라고 이야기해야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도 되고 긴장도 돼서 거실에 앉아 전화기를 붙잡고 숨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때마침 같이 사는 동생이 퇴근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이 친구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J, 혹시 전화 좀 걸어줄 수 있어?"
"엥? 무슨 일이에요?"
"오빠가 내일 오전 비행기로 이제 떠나는데, 결국 소방서에 못가봤어. 혹시 내일 오전 일찍 잠시 방문해도 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아, 알겠어요. 잠시만요"
이렇게 J는 흔쾌히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줬어요. 사실 전화를 받을지 안 받을지도 잘 몰랐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더라고요. 짧게 통화를 끝낼 줄 알았지만 J는 10분 이상 통화를 했던 것 같아요.
"누나, 지금 당장 오라는데요?"
"헐, 진짜? 지금 바로??"
"네! 내일 아침보다는 지금 바로 오는게 좋을 것 같대요."
이 한마디에 저희 가족들은 저녁도 안 먹고 바쁘게 옷을 입고 모두 소방서로 향했습니다. J는 이제 막 퇴근해서 꽤 피곤해보였지만 저희와 동행해줬고 소방서를 둘러보는 내내 저희 오빠 옆에 딱 붙어서 동시 통역사가 되어줬어요.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뉴질랜드의 키위인 J가 대단히 커 보였던 하루였어요. 굉장히 고마웠죠.
저희가 소방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보안이 철저했어요. 벨을 눌러서 들어갔는데 보통 건물에 들어가듯이 들어가는 것과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보안이 2중, 3중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6명의 소방대원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그중 1명이 저희를 맞이해줬어요.
사실 간단한 인사와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나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40분 정도 소방서 안을 돌아보며 모든 설명을 들었던 것 같네요. 뭐가 뭔지, 뭘하는데 쓰이는 것인지, 어떤 공간인지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었죠. 아마도 오빠가 소방관이었기에 더욱 꼼꼼하게 알려주셨던 것 같아요.
첫째 조카는 사실 아빠가 근무하는 소방서에 몇 번 가본 경력이 있기에 소방차가 낯설지 않은 것 같았어요. 저는 오빠가 소방대원으로 근무를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빠가 일하는 서에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소방차를 눈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어쩌면 제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을 장면이었을 거예요. 이런 소방서의 모습과 소방차, 소방관?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아무나 경험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린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고 좋은 사람, 좋은 상황을 잘 만났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와중에 친절한 소방관 아저씨와 사진도 찍었어요. 이 분은 오빠가 다른 소방관의 설명을 듣는 동안 멀뚱히 서있는 저와 새언니, 아이들에게 다가오셔서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의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보여주시고 설명해주셨어요. 아들이 20대 중반의 총각인데 복싱선수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죠.
그러다가 조카가 문득 궁금했나봐요. "고모, 아저씨 왜 대머리야?"라고 묻더라고요 ^^;; 한국말을 썼으니 당연히 못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머리를 만지면서 쳐다보니 자기 이야기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 재차 물어보는 아이와 소방관 아저씨 틈에서 약간 민망했던 순간이었어요^^;;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건데... 싶었죠. 가끔 집에서 옷을 이렇게 쏙 벗어두는 사람들 있잖아요? 집에서 허물 벗듯이 쏙 벗어서 걸지도 않고 바닥에 두면 그렇게 밉상일 수가 없는데, 여기서는 좀 다르게 보이네요. 소방관들은 모두 이렇게 벗는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벗어야 출동할 때 재빠르게 신발과 바지를 동시에 착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어느 국가 소방관이든 모두 이렇게 한다고 하네요.
소방관들이 타는 빨간 트럭은 그저 소방차, 불자동차라고만 불렀는데 종류가 다양하더라고요. 이 차는 그중에서 '구조공작차'입니다. 소방관 아저씨와 오빠, J가 함께 트럭에 탄 채로 설명을 들었어요. 문이 열린 뒷좌석에는 총 3명이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뒷좌석 수납공간의 모습이에요. 오른쪽 사진 중앙에 있는 기계는 '열화상 카메라'입니다. 그 외에도 중요서류들과 현장에 필요한 서류들이 수납되어 있었어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한 명칭과 설명을 알려 드리긴 어려우니 간단하게 이해한 내용만 말씀드리자면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기구는 '차량을 안정화시키는 기구'라고 합니다. 사고 차량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해요.
왼쪽에 보이는 나무 조각들은 '나무 쐐기'라고 부르는데 이 것 또한 차량 밑에 누군가 깔렸을 경우 안정화를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쓰임새가 훨씬 많겠죠? 나무 쐐기 옆에 빨간색 손잡이가 있는 기구는 '전동 컷소'입니다.
소방차에는 온 사방에 수많은 수납공간이 있었는데 이 것은 소방 호스를 수납한 모습이에요. 이렇게 정리된 호스를 '아코디언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사진 하단에 보이는 호스 끝부분을 들고뛰면 호스가 촤르르 풀려나온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돌돌 말아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굴려서 호스를 풀어야 한다고 해요.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 상황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것은 아직 한국 소방서에는 도입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현장에 소방대원이 투입될 때 자신의 네임택을 이 상황판에 꽂고 출동하면 그 사람의 상태를 알려준다고 해요. 사진 상단에 보시면 네임택 하나가 꽂힌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것을 꽂고 현장에 투입될 경우 이 상황판이 대원의 산소 수치나 위험 등을 자동으로 알려준다고 해요.
또한 현장에 투입된 대원이 일정 시간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 '맨 다운 경보(firefighter man down alarm)'라는 시스템이 작동해서 경보를 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대원이 투입될 때 상황판에 자석으로 이름을 붙이는 형식이라고 하는데요. 소방서마다 조금씩 환경이 다르겠지만, 이런 좋은 장비들이 한국 소방에도 많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네요.
이 것은 연습용으로 하나 꺼내놓은 것이라고 해요. 오빠가 가장 궁금해했던 것이 바로 화학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는데요. 아쉽게도 뉴질랜드는 화학공장이 없을뿐더러 화학 사고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 화학 보호복 정도는 대비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어요. 오히려 한국이 화학사고에 더 잘 대처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었죠.
한국에서는 산청에서 나온 화학 보호복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몸을 모두 덮느냐, 덜 덮느냐에 따라서 A급, B급, C급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공기 호흡기를 착용한 후에 입으며 머리까지 쏙 다 들어가는 사진 속의 보호복은 한국 기준으로 A급이라고 해요. 등급을 구분하는 단위나 조건은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았어요.
공기 호흡용기와 소화기를 보관해두는 공간도 있었어요. 오빠 말로는 용기는 똑같은 사이즈지만 젠더 부분이 한국 용기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하더군요. 오빠가 소방학교를 수료하고 처음 장비를 받아서 집에 왔을 때 제가 저걸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정말 무겁습니다. 저런 걸 등에 메고 사람 구하러 불길로, 물길로 뛰어다니는 소방관들한테 국가도 국민도 정말 잘해야 해요.
이 곳은 탈의실이에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입는 옷들과 모자 등으로 가득했어요. 땀냄새와 불냄새가 섞인 이 공간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죠.
탈의실 옆에는 소방대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요. 그 옆에는 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이 곳의 규칙상 모든 대원들은 근무 중에 최소 1시간은 운동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모든 시설이 아주 쾌적하죠?
그 옆에 있는 주방은 더 환상적이었어요. 저희 집 주방보다 3배는 클 것 같은데요. 근무 중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지 상상이 되지 않더라고요. 이런 주방이 있다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세미나실에서 저희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챙겨온 한국 소방관 패치를 꺼냈어요. 사진 속 패치는 국기밖에 없지만, 제가 사진을 못 찍었을 뿐 정말 다양하고 멋진 한국 소방 패치들이 있었어요. 그러자 뉴질랜드 소방관 아저씨도 미리 준비한듯 뉴질랜드 소방서 패치를 건네셨어요.
알고 보니 전세계 어디를 가든 소방관들은 서로 이렇게 자신들의 패치를 교환하는 전통이 있다고 해요. 소방관들끼리는 언어보다 더 진하게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나 봐요. 어쨌든 중요한건 그들 모두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죠.
캄캄한 이 밤 갑작스러운 우리의 부탁에 이렇게 친절하게 기대 이상으로 대해주신 위그램 소방대원들에게 큰 감사를 전하며 저희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첫 경험이었던 외국 소방서 견학! 현직 소방관인 오빠에게는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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