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게라지(garage)세일'을 아시나요? 뉴질랜드의 모든 집에는 게라지(garage)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차고입니다. 키위들은 이 곳에 주차도 하고 남는 공간을 활용해서 공방처럼 쓰기도하고 창고로 사용하기도 하죠. 대부분의 키위들은 게라지에 냉동고를 보관하기도 합니다. 땅이 매우 좁은 한국에서 살다가 이 곳에 오니 집집마다 있는 게라지와 가든의 사이즈에 가장 놀랐었는데요. 하루 일과의 반나절을 가드닝에 투자할만큼 이 곳의 가든은 매우 컸으며 키위들은 자신들의 삶 그 자체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죠. 언젠가 뉴질랜드도 주거지역 부족으로 인한 땅문제가 생길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토론이였습니다. [ 가든을 없애면 되지 않나요? ] 라고 말했더니 [ 오 마이 갓, 절대 안돼요! 가든은 키위의 삶이며 절대 없앨 수 없어요 ] 라고 말씀하셨죠. 그만큼 모든 집에 가든이 있고 게라지가 있는 곳이 뉴질랜드입니다.
여튼, 오늘의 주인공은 게러지에요. 키위(뉴질랜드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중고물품을 게러지에 전시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행위를 종종합니다. 한국의 벼룩시장과 아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특정 장소에 시장이 열려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있는 게러지에다가 판을 벌린다는 겁니다. 올 사람은 오고 말 사람은 말라는 거죠. 어떤 물건이든 그냥 버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않고 일단 중고로 팔아보고 정말 안되겠다 싶은 물건은 버리는거죠. 제가 살고 있던 대구에도 일명 '구제샵'이라는 이름으로 헌옷을 세탁 수선해서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이 생겼던 기억이 나는데요. 아주 비슷한 모양인 것 같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한국인의 집인데 '귀국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찾아갔습니다.
*게라지(garage) :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
*게라지 세일 : 게라지에 중고물품을 전시해 놓고 판매하는 행위
*귀국세일 : 이민을 목적으로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물건을 값싸게 파는 것
보통 게라지세일은 큰 홍보를 하지 않습니다. 골목의 전봇대나 집 앞에 세워진 차 위에 '게라지 세일'의 정보를 적어서 붙여놓기만 하죠. 그러면 차를 몰고 가다가도 발견하면 들어오고, 걸어가던 주민들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그렇게 집 주인에게 오직 현금으로만 거래를 하죠. 뉴질랜드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라 게라지 세일을 가도 특별히 좋은 물건을 건지기가 어려운데, 가끔 '귀국세일'이라는 정보가 인터넷에 뜨면 이 땐 바로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희도 귀국세일을 한다는 말에 2곳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두집 다 수년전 이민을 결정해서 뉴질랜드로 왔는데 갑작스러운 귀국을 하게 되면서 가구, 가전, 자동차 등 대부분의 짐을 급하게 처분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엄마들 또 한 꼼꼼합니다. 물건도 알뜰하게 잘 사용하죠. 그래서 이런 물건들은 꼭 구입하는게 좋습니다. 급하게 귀국하시는 엄마들이 대부분 좋은 물건을 값싸게 처분합니다. 이 분들에게는 속상한 일이지만, 저희처럼 집이 텅텅 비어 있는 새내기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죠. 트레이드미나 정보망을 통해 젊은 유학생들도 게라지 세일을 하긴 하는데 학생들의 물건은 보통 여러번 돌고 돌아서 온 중고의 중고이기 때문에 구입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오! 완전 싼데? 대박! ] 이러면서 구입했지만, 피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엄마들이 좋아요.
↗ 첫번째로 방문한 집은 집에 어른이 아프셔서 급하게 귀국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민 결정을 하고 컨테이너를 빌려서 뉴질랜드로 이사를 왔다고 했지만,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올 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이 집에는 차가 두대가 있었는데, 한 대는 뉴질랜드에 남아 있는 아저씨께서 타시고 나머지 한대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차종은 미쓰비씨의 웨건 차량입니다. 약간의 흠집 외에는 별 탈이 없어 보이는 적어도 10년은 넘은 고령의 차입니다. $3,000 정도의 가격에 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저렴해서 약간 미심쩍기도 했지만 안전성을 보장하는 우프(WOF) 검증을 받은 인증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 오늘이 게러지 세일 3차라서 좋은 물건들이 대부분 빠졌는데, 왜 이제 왔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저도 아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진에 나오진 않았지만 삼성 세탁기, 카페트 전용 다이슨 청소기, 온돌판넬 3장과 조절기, 의자 4개, 옷장 등 정말 좋은 물건들을 헐값에 많이 구입했거든요. 1차 귀국세일 때 왔었다면 더 좋은 물건들이 많았겠죠. 집에 어떤 가구도 어떤 가전도 없었던 저희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물건들을 대부분 구입했습니다. 차에 다 싣을 수가 없어서 여러번 다녀가야 했습니다. 그나마 집이 가까워서 다행이였죠. 뉴질랜드의 추위에 불편함을 많이 느꼈는데 온돌판넬을 헐값에 구매할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 차를 구입했으니 그래도 거래금액이 크기에 나름의 계약서를 적었습니다. 선수금을 먼저 지급하고 모든 물건을 받을 때 잔금을 치루기로 했죠. 혹시 모르니까 분명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아직 좋은 물건이 더 남아 있지는 않나 싶은 마음에 보이는 물건마다 [ 아주머니, 저건 안 파세요? ] 라고 물어봤습니다. 게중에 얻어걸리는 것도 있더라구요. [ 아, 그건 버릴거에요. 너무 낡아서 팔기도 애매하고.. ]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 그럼 저한테 버리세요! ] 라고 말씀드리며 공짜로 받아온 물건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반찬통, 주방용품들을 덤으로 얻어왔죠.
↗ 저희가 찾아간 두번째 집은 저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뉴질랜드에서 6년이 넘는 기간을 살았지만 한국이 그리워서 떠난다고 합니다. 훗날의 제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합니다.
↗ 게러지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각종 물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쇼파 위에는 대부분 옷이 있고 바닥에는 주방용품부터 책, 소가구, 반찬통, 책꽂이, 가방 등 여러가지 물건이 많습니다. 너무 사소한 것들도 많이 나와 있어서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옷은 제 옷을 넉넉하게 가져왔기에 구입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숨어있던 '시슬리(Sisley)' 클러치백을 하나 건졌습니다. 거의 새 것 같이 보였는데 적어도 10만원은 줘야할 브랜드 제품을 $5에 건졌죠. 선물을 받았는데 본인과 어울리지 않아 거의 매지 않고 넣어뒀다고 합니다.
↗ 파란 쇼파는 깨끗하기도 했고 커버를 벗겨서 세탁이 가능하길래 바로 구입했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3인용 소파, 책상 2개를 더 구매 했는데, 대부분의 가전과 가구가 $20~30 정도였습니다. 한국 돈으로 거의 1~ 2만원대에 구입한거죠. 특히 전자렌지는 박스도 남아 있는 거의 새 것이라서 정말 기분이 좋았고, 가장 필요했던 신발장을 덤으로 얻어온 것이 가장 기뻤습니다.
↗ 쇼파를 싣고 그 위에 책상을 분리해서 싣고 공간이 남는 곳에 전자렌지, 신발장 등을 밀어 넣었습니다. 구입하지 않았지만 필요할테니 그냥 가져가라고 책, 많은 새 노트, 연습장, 우산, 슬리퍼 2개, 장화, 포장이 뜯기지 않은 된장, 옷걸이, 반찬통, 도마 등을 주셨습니다.
↗ 집에 오자마자 전자렌지를 알맞은 자리에 설치했습니다. 딱 맞게 쏙 들어가서 기분이 좋네요. 안도 겉도 새것처럼 깨끗해서 기분 좋게 사용할 것 같습니다.
↗ 체스판인줄 알았는데, 도마라며 그냥 주신 물건. 저는 이 것을 도마가 아닌 냄비받침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 큰 고추장과 된장은 원래 제 것이고, 작은 된장과 쌈장은 이번 게라지 세일에서 얻어온 겁니다. 한국 식품이 워낙 금값이라서 이렇게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별 탈 없어 보이던 차가 자세히 보니 얼마나 관리가 안되었던지.. 집에 오자 마자 세차를 했습니다. 건축현장에 타고 다니던 차라서 그런지 엄청난 흙먼지와 집에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과자 부스러기도 엄청 많았습니다^^;; 아.. 청소를 시작해야겠군요. 타이어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덩어리 흙이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창틀에는 초록색 이끼가 자라고 있었지요. 물티슈를 가지고 열심히 닦아내고 시트도 열심히 닦았습니다. 패브릭이라 얼룩이 깔끔하게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깨끗해지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제 정말 우리 차구나, 하는 마음에 괜히 애착도 갑니다. 집에 정리해야할 짐이 한가득 생겼지만 살림이 생긴 것이니 기분이 좋기만 합니다.
게라지 세일에서 판매하는 중고물품은 모두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좋은 물건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웨어하우스나 브리스코스의 물건이 더 안좋은 경우도 있죠. 키위의 'Second hands(중고)'는 아주 알뜰하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살았다면 절대 이렇게 구입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주 좋은 물건들도 대부분 저렴하게 판매하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가 구입한 자동차도 한국이었다면 이미 폐차가 되고 남았겠죠. 한국에서 살 때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어떻게든 새 것이 좋았고 예쁘고 좋은 것들도 내 집을 채우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이 곳에 와서 조금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내가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고 살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시내에 나가도, 털털거리는 오래된 차를 끌고 다녀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곳이 뉴질랜드입니다. 물론 너무 과한 것은 싫습니다. 저희 신랑이 떨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저도 싫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오래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는 문화가 당연하게 박혀 있는 뉴질랜드의 문화를 한국에서도 조금은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직 쓸 수 있지만, 아직 멀쩡하지만 조금만 싫증이 나도 버리는 우리의 삶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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