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지내다보면 종종 엄마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물론 한국에 살더라도 친정 엄마 음식 그리울 때는 종종 있겠지만, 타국에서는 그 그리움이 배가 되는 것 같네요. 비가 오는 날에는 엄마가 만들어 떠주시던 수제비가 그렇게 생각이 나고 입맛 없는 날이면 굉장히 짜지만 맛있었던 엄마의 옛날식 된장찌개랑 신김치 팍팍 썰어 넣은 비지찌개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고요. 어떤 음식을 만들던지 분명 엄마가 알려준 그대로 만들었는데 엄마가 해주던 맛은 나지 않습니다. 언제쯤 엄마의 손 맛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네요^^
중국마트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채소를 발견했는데 NZ$2.69(한화 2천원)로 가격도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 냉큼 구입했어요. 자전거 바구니에 이런 야채 싣고 달리면 진정한 아줌마가 된 것 같아서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뭐 제가 아줌마지 아가씨는 아니니까요. 집으로 가서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엄마에게 페이스톡을 걸었어요.
배추 생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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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치치는 배추 값이 금 값이에요. 김치를 담가야할 때가 되었지만 너무 비싸서 구입을 미루고 있지요. 헌데 배추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많이 길쭉하고 날씬한 야채가 있더라고요. 이 것은 필시 배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걸로 하나 집었어요. 중국마트에서는 영문표기로 'Long chinese cabbage'라고 적혀 있었어요. 페이스톡을 통해 엄마에게 이 야채를 보여드렸죠.
"엄마 이거 뭐야?"
"아, 그거 조선배추네~"
"그런게 있어? 하여튼 배추는 배추네? 그럼 이걸로 배추 생채도 만들 수 있지?
왜 있잖아, 엄마가 늘 해주던거~ 무생채처럼 빨갛게 무쳐주던거"
"아~ 그거? 당연히 되지~"
"어떻게 만들어? 뭐 넣어?"
이렇게 하여 엄마에게 어떤 양념재료가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끊었습니다. 일단 맛있게 만들어서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그랬죠. 생각보다 별거 아닌 반찬이었는데 이게 그렇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신랑이 워낙 고기 반찬을 좋아하니 고기 반찬을 많이 준비하는 편이지만, 사실 신랑 없이 저 혼자 밥 먹을 때는 이런 야채무침이나 김치나 된장찌개 남은 국물만 있어도 밥 한끼는 아주 맛있게 뚝딱입니다. 제가 이렇게 한끼를 해결할 때면 신랑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인데요. 저도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엄마의 모습을 제가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뉴질랜드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보던 배추를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라고 부릅니다. 배추는 배추인데 길쭉하다고 Long가 붙어서 '롱 차이니즈 캐비지'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가 조선배추라고 하니 우리는 조선배추라고 부릅시다.
조선배추는 뿌리부분을 잘라서 안쪽까지 깨끗하게 모두 씻어줬어요. 물기를 충분히 빼서 준비해주세요.
생각보다 양이 많았지만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념을 하면 순식간에 숨이 죽거든요. 송송송 채썰어서 준비해주세요.
다진 마늘 1큰술, 국간장 4큰술, 맛소금 1 작은술, 참기름 2큰술, 고춧가루 3큰술, 통깨 1큰술 넣어서 살살 버무려 주세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배추에게 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살살 털어주듯 버무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2통으로 나눠서 담았어요. 오른쪽 일반용기에 담은 것은 보관해서 제가 먹을 것이고 왼쪽에 일회용 용기에 담은 것은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에게 드릴거에요. 이런 반찬은 아무래도 어른들이 굉장히 좋아하시는 한국 정서 뿜뿜 반찬이죠.
작은 반찬 그릇에 담아도 이렇게 이쁘네요. 색감이 좋아서 더 맛있게 보이기도 하고 밥이랑 같이 먹어보니 아삭하고 짭조름하고 배추 특유의 달큰한 맛도 있어서 참 좋았어요. 사실 이건 이렇게 반찬 그릇에 떠서 먹기보다는 양푼이에 찬 밥이랑 같이 넣어서 비벼 먹는게 제 맛이죠. 고추장을 넣지 않아도 정말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고기나 달걀 후라이 같은 것은 넣지 않는게 더 맛있다고 자부합니다.
내일 아침에 신랑 보내놓고 저 혼자 있을 때 점심으로 밥이랑 같이 먹어야겠어요. 온전히 저를 위한 반찬입니다. 엄마 맛은 여전히 완벽히 구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얼추 비슷한 느낌과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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