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1일, 벌써 2017년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네요. 딱 1년전 2016년 12월 1일에 저희는 뉴질랜드에 왔었어요. [ 와, 벌써 1년이 지났어? ] 빠르게 지나간 지난 1년을 뒤돌아보니 후회도 많고 힘들었던 기억도 많네요. 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감사인 것 같습니다.
▲ 마운트쿡 여행을 갔을 때 만년설이 보이는 도로 옆에서 신랑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직접 코앞에서 보는 만년설은 처음이라 참 가슴 설레고 벅찼던 시간이었답니다. 우리가 정말 뉴질랜드에 있다는 생각이 한번 더 들었죠. (*참조링크 : 뉴질랜드의 알프스, 마운트 쿡(Mount Cook)
▲ 크라이스트처치 근교 '캐슬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외곽으로 나가봤던 날이었죠. 치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산과 언덕,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떼를 처음 만났던 날입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만나는 광경에 쉴새없이 [ 우와~! ] 라는 탄성을 내질렀죠. 정말 아름다웠던 뉴질랜드의 첫인상! (*참조링크 : 뉴질랜드의 홀리데이(Holiday), 캐슬 힐(Castle hill)을 가다)
▲ 저희가 살고 있는 아일람에서 자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뉴브라이턴 지역의 뉴브라이턴 피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바람이 굉장히 거셌지만 아름다운 밀키스 색상의 바다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신랑과 함께라서 더 좋았습니다. (*참조링크 : 따뜻한 마음이 모여 세워진 곳, 뉴브라이턴 피어)
▲ 치치에서 가장 큰 공원인 '헤글리 파크'를 신랑과 둘이서 처음 걸었던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늘 바라볼 새도 없이 바쁘게 일만 하고 살았는데, 뉴질랜드에 와서 제대로된 여유를 많이 즐겼던 것 같네요. (*참조링크 : 도심속의 휴식공간 '헤글리파크(Hagley Park)')
▲ 6개월간 다닌 어학원 수업이 끝났던 날, 저희 집 앞에서 떠나는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본 친구들인데 다들 너무 친절하고 착하고 좋았답니다. 6개월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할 때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어학원을 다니면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보다 레벨이 낮은 친구들도 경험삼아 일을 했었는데, 저는 제 영어가 조금 더 준비가 되면 일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미루고 미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비자 조건이 되지 못해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답니다. 진짜 영어가 늘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때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키위들과 함께 일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약간 있답니다.
▲ 가장 친하게 지냈던 두 일본 친구들이 떠나기 전에 함께 가까운 테일러미스테이크 해변으로 갔었답니다. 그 곳에서 고들리 헤드를 따라 트래킹을 했었죠. (*참조링크 :고들리헤드로 트래킹 아웃팅!) 어학원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하나둘 모두 떠나고 나니 영어를 쓸 기회는 점점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배웠던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가지고 있는 책을 가지고 복습을 늘 하고 있지만 스피킹 실력이 점점 약해짐을 많이 느낍니다. 저희 비자가 안정이 되면 내년에는 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 키위들의 세상으로 조금 더 빠져 들어야할 것 같네요. 사회 봉사활동이나 유치원 같은 곳에 봉사자로 가서라도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연말입니다.
뉴질랜드로 떠나온지 1년, 여전히 한국이 그립습니다. 뉴질랜드는 천혜의 환경을 가진 정말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 좋습니다. 가지고 있는 꿈과 계획들을 위해 이 곳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은 한국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참 그리워요. 1년전 계획대로라면 12월인 지금 저희는 한국으로 한달간 방문을 했었어야 하지만, 내년 1월 시댁 식구들의 방문과 2월 친정 식구들의 방문으로 인해 저희는 뉴질랜드에 머물게 되었어요. 엄마가 참 많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매일 안아주고 뽀뽀해줬던 우리 첫조카가 가장 궁금합니다. 그저께 영상통화를 하는데 첫조카가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금새 잊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팠답니다. [ 내 너를 그리 사랑하고 아꼈었건만... ] 그래서 다시 한번 얼굴을 비추며 [ 이모야, 이모! ] 라고 확인도장을 찍었지요. 조카에게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30살에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떠나온 뉴질랜드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지금 이렇게 별탈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몇일 전 저희는 방문자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지금은 이민성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아마 별탈없이 잘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신랑은 내년 대학준비를 해야하고 저는 저대로 돈을 벌어야 하고 학자금 부담도 크고 가야할 길은 멀지만, 멀고 먼 고지에 꽂혀있는 영주권 깃발 획득을 위해서 저희는 오늘도 달려갑니다. 20대가 끝나면 내 청춘과 꿈은 끝날 것 같았지만, 30대의 시작에 저희의 꿈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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