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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삶나눔

엄마가 수술을 하셨어요

by Joy_Tanyo_Kim 2017.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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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수술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속병이 있으셔서 수술하신 것은 아니고 여태 불편했던 발 수술을 하셨답니다. 엄마는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태어나셨는데 어릴 때부터 아빠가 돌아가시던 순간까지 농사를 지으셨답니다. 저도 농부의 딸이죠. 엄마의 발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셨는데 '무지외반증'이라고 부르더군요. 엄지발가락부분의 뼈가 조금씩 튀어나오는 증상인데 나중에는 정상적인 신발을 신는 것이 어려워졌답니다. 그래서 걷는 것도 힘들어 하셨고 조금만 활동하셔도 통증에 괴로워하셨어요. 자꾸 발가락이 서로 닿으니 티눈도 생기게 되고 고생이 많으셨답니다. 못생긴 발 때문에 평생 예쁜 구두 한번 신어보지 못하고 살아오신 엄마를 생각하니 참 많이 속상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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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제 조카(언니의 딸)가 병원 침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습니다. 꽃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얼마나 똑같은지! 


저희 아빠는 제가 중학교 2학년에 다닐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그 때 꽤 크게 농사를 지었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농사를 접게 되었죠. IMF시절에 힘들지 않았던 가정이 거의 없었겠지만 저희집도 기둥이 뽑혔었답니다. 그 때 진 빚을 아빠의 사망보험금으로 갚게 되었어요. 



언니와 오빠가 고등학생, 제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에 엄마와 저희를 두고 떠나간 아빠가 참 많이 야속했어요. 아빠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에 엄마는 저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하루에 일을 3군데나 다니시며 저희를 키우셨어요. 그렇게 고생하며 저희를 키우시고 입히셨던 엄마를 생각하면 조금 더 잘 되지 못해서, 조금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해서, 조금 더 호강 시켜드리지 못해서 많이 죄송하답니다.




▲ 엄마의 발이에요. 왼쪽사진은 수술전, 오른쪽 사진은 수술후의 모습입니다. 


엄마의 발을 이렇게 사진으로 비교하며 보니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렇게 뼈서 틀어질 동안 얼마나 아프셨을까 싶고 수술은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기도 했죠. 엄마는 수술을 위해 언니와 함께 KTX를 타고 서울까지 갔다고 하네요. 제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엄마 곁을 함께 지켰을텐데.. 뉴질랜드라는 땅까지 너무 멀리 와 있어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영상통화와 기도뿐이었어요. 심각한 속병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기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도했답니다. 요즘은 의료시설이 아주 좋아져서 뼈를 깍지 않고 안으로 끌어 당겨 핀으로 고정하는 방법도 있더군요. 이래저래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아보느라 언니가 참 많은 수고를 했어요. 




▲ 수술이 끝나고 퉁퉁 부은 엄마의 발입니다. 


전신마취를 하면 깨어날 때 보통 추위를 굉장히 많이 느끼잖아요? 턱이 움직일만큼 덜덜덜 떨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엄마는 전신마취를 하고 어깨수술을 하신적이 있답니다) 과거에 제가 척추수술을 했을 때 저 또한 그렇게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언니 말이 이번에도 엄마는 그렇게 떨어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정말 많이많이 속상하답니다. 아마 언니도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엄마는 3박 4일이라는 기간동안 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했답니다. 덕분에 간호하느라 언니도 고생했고 덩달아 우리 이쁜 조카도 함께 병원신세를 졌지요. 무통을 달아서 통증을 최대한 느끼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많이 아팠다는 우리엄마, 이번에 양쪽 발 무지외반증 수술을 하면서 티눈, 양쪽 발 엄지발가락 내성발톱 수술까지 함께 했다고 합니다. 아주 멋진 전용 신발까지 병원에서 줬는데 몇달간은 이 신발만 신고 다녀야 한다네요. 




▲ 남들이 보면 [ 심각한 병도 아닌데, 뭘 그리 걱정하냐? ]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뿐인 우리 엄마, 내 가족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마음처럼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감기에만 걸려도 이마를 짚어보게 되고 물을 끓여 꿀차라도 내어주고 싶은 것처럼 제 마음은 참 바쁘게 움직였답니다. 


작업실로 사용중인 리빙룸에서 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답니다. 하늘도, 바람도, 꽃과 나무들도 참 평안해보이는데 제 마음은 참 분주하네요. 끊임없는 걱정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의 컨디션을 확인했답니다. 이래서 가족은 떨어져 사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어서 신랑과 계획하는 영주권에 대한 모든 것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제 첫단추를 끼우는 시점인데 벌써 이렇게 가족들과 나라가 그립습니다. 어서 이 곳의 삶이 안정되어 비자 걱정없이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고 싶네요. 




엄마는 하모니카 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들은 곡을 자유롭게 잘 부시죠. 신랑이 엄마에게 하모니카를 처음 사드렸을 때 엄마는 정말 기뻐하셨답니다. 하모니카 특유의 소리가 그 때는 참 듣기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들을 때는 좋아도 매일 집에서 부시니 저도 약간은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요 ^^;; 



하지만 지금은 엄마의 하모니카 소리가 참 많이 그립답니다. 가끔 영상통화를 걸었을 때 [ 엄마, 하모니카 지금 있어? 나 엄마 하모니카 연주 듣고 싶은데~ ] 라고 말하면 엄마는 냉큼 하모니카를 꺼내서 저를 위해 연주를 해주십니다. 한참 더웠던 여름에 엄마가 하모니카를 연주해주시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스크린샷으로 찍었던 사진입니다. 엄마는 저를 위해 '엄마는 섬그늘에' 를 연주해주셨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도 연주를 마치고는 [ 우리 딸, 보고싶네! ] 라고 하시더군요. 




집 앞 공원에 목련이 예쁘게 꽃을 피웠습니다. 넓은 잔디밭에 작고 아담한 목련 한그루가 서있는데 꼭 엄마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욱씬거렸답니다. 이렇게 홀로 바람 다 맞으며 견뎌 꽃을 피워낸 목련 나무처럼 엄마의 삶이 그렇게 단단하고 억세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제글을 받아보시니 아마 엄마도 이 글을 보겠지요. [ 엄마, 고맙고 사랑해 ] 




▲ 목련이 참 우아하고 정말 아름답습니다. 목련보다 아름다운 엄마는 오늘 퇴원을 하셨습니다. 한동안은 대구 근교에 있는 언니와 함께 생활을 할 것 같네요. 그래도 엄마의 병원생활이 탈없이 잘 끝나서 너무 다행이고 수술이 잘 되었다니 아주 기쁩니다. 연말에는 한국에 가고 싶었는데 사실 지금 상황으로는 확실하지가 않네요. 제가 먼저 한국에 갈지, 엄마와 언니가 뉴질랜드에 먼저 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어서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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