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신랑이 종종 속이 쓰리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보니 이번에도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었어요. 헌데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좀 더 아픈것 같다는 말을 했었어요. 빈 속이라 위산 때문에 더 쓰리고 아픈가 싶어서 신랑과 함께 아침을 간단하게 차려 먹고 약도 챙겨 먹은 다음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외출을 했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랑의 복통은 더 심해졌고 오한에 발열, 구토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고 견디다 못해 결국 저녁 6시 쯤 응급실로 가게 되었답니다.
▲ 크라이스트처치 병원의 응급실로 가는 길목입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가장 큰 병원인 크라이스트처치 병원은 오타고 의대생들이 실습을 하는 대학병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생각나는 응급실이 이 곳이라 곧장 갔는데 접수비만 $420... 게다가 사람이 워낙 많아서 5시간은 대기를 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신랑은 너무 힘들어하는데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고 무료라고 알았던 진료비도 너무 비싸서 결국 가까운 24시간 닥터(의원)로 이동하게 되었어요. 치치 병원에서는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지난번 엄마를 모시고 한번 가본 적이 있던 곳이었어요.
▲ 페가수스 24시간 닥터(의원)는 동네 곳곳에 있는 수많은 닥터 중에서도 꽤 규모가 있는 곳입니다. 게다가 24시간 진료를 하기 때문에 꽤 많은 환자들이 이 곳으로 모인답니다. 접수를 하고 간호사를 통해 간단한 인터뷰와 혈압을 체크한 다음 소변통을 제출했습니다. 이 때부터 저희는 3시간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답니다.
살짝 쓰린 정도로 시작되었던 신랑의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졌고 배가 아파 어쩔줄 몰라하는 신랑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나의 무능력함을 실감할 때의 기분은 참담합니다. 정말 미안하고 대신 아파주고 싶을만큼 속상했습니다.
▲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간호사가 음료 서비스를 했습니다. 커피와 음료수, 우유, 온수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급했답니다. 저는 힘을 얻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받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시간 대기를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잠이 오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 3시간이 지나자 의사가 신랑의 이름을 부릅니다. 의사가 안내한 곳은 커텐으로 공간을 분리한 간이 병실입니다. 이 곳에서 간단한 검사와 진단을 하는데 신랑이 많이 추워하자 간호사가 담요를 줬습니다. 이 곳에서 피검사를 위한 채혈도 하고 의사와 대화를 하며 인터뷰도 했답니다. 약을 줘서 먹으니 30분 뒤에 와서 [ 좀 어때? ] 라고 물어보고 [ 차도가 없어, 여전히 아파 ] 라고 하자 다른 약을 한번 더 줬답니다. 그리고 또 30분 뒤에 와서 [ 좀 어때? ] 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그래도 전혀 차도가 없자 몇가지 검사를 더 해보고는 저희에게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 24시간 닥터에서 저희를 연결해 보낸 곳은 처음 찾아 갔었던 크라이스트처치 병원이었습니다. 3시간을 대기하고 3시간을 진료와 검사까지.. 총 6시간을 여기서 보냈는데 [ 우리 능력으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스페셜리스트(전문의)를 만나야할 것 같아 ] 라고 말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정말 한숨이 나오더군요. [ 구급차 타고갈래? 지금 너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가 있어 ] 라고 이야기 했지만, 자차로 이동이 가능하기도 했고 고작 5분 거리라 돈 $200(구급차 비용) 아끼자는 마음으로 자차를 이용했답니다.
▲ 이 곳에서 저희는 $185을 페이하고 곧바로 치치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치치 병원의 어디 병동으로 가야하는지도 자세하게 적어서 안내를 해주셨답니다. 사실 저희는 신랑의 기본적인 신상과 인터뷰했던 내용들, 혈압과 피검사 결과 등 많은 것들이 다 담겨 있었기에 곧바로 치치병원으로 연결이 될 줄 알았답니다. *계산을 할 때 보험사에 제출할 진단서와 서류는 꼭 챙기시는게 좋습니다.
▲ 다시 치치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의 시간은 새벽 12시 35분입니다. 아직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었고 저희도 수속을 밟기 위해 급히 접수처로 갔답니다.
▲ 처음에 비싸다고 손을 벌벌 떨었던 $420이라는 접수비를 내고 저희의 기다림은 또 시작되었답니다. 24시간 닥터에서 인터뷰 했던 내용들을 또 다시 그대로 인터뷰 했어야했고(이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저희는 다시 4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 외국에서는 아픈게 죄인이다 ] 라고 신랑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말 공감되더라고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통증에 신랑은 시달리고 시달려 이제는 기운이 다 빠진 듯 보였습니다.
▲ 새벽 4시 30분에 신랑은 드디어 입원을 하게 되었답니다. 신랑이 환자복으로 갈아 입자 간호사가 간단한 질문지 시트를 가져와 또 인터뷰를 했습니다. 알러지는 있는지, 술은 먹는지, 담배는 피는지, 원래 질환이 있는지, 아팠던 이력이 있는지 등등... 그 날 같은 인터뷰만 5번이나 했답니다.
무려 10시간을 병원에서 무작정 대기만 했는데 멀쩡한 저도 이렇게 힘든데, 신랑은 오죽 힘들었을까요. 게다가 새벽 시간이니 더 힘들었겠지요. 신랑이 상태를 확인한 다음 꼭 안아주고 손과 볼에 입을 맞춘 뒤 저는 집으로 돌아 갔답니다.
▲ 뉴질랜드의 병원에서는 한국 병원 어딜가도 마땅히 보이는 간이 침대가 없답니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사용할 침대가 없는거죠. 알고보니 이 곳에서는 모든 환자마다 담당 간호사가 붙어서 케어를 하기 때문에 보호자나 간병인이 밤새 곁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신랑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 곳의 방식에 따라 저는 집으로 갔지요.
▲ 그리고 다음날 신랑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왔습니다. 오전에 담당 의사가 오타고 의대생들을 잔뜩 데리고 회진을 왔는데 신랑 배를 훌러덩 까서 진료를 했다고 하더군요. 하필 의대생 중 한명이 한국인이라 신랑이 조금 민망했다고 합니다 ^^;; [ 배는 아무나 안보여주는데... ] 의사가 증상을 묻자 신랑은 [ 속이 쓰리고 명치 쪽이 아프다가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고 구토, 오한, 발열이 동반되더니 나중에는 아픈 자리가 명치에서 아래로 점점 내려간다 ]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 맹장이네! ]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알고보니 신랑이 말한 이 모든 증상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정석 같은 증상이라고 하네요. 오타고 의대생들 또한 굉장히 깔깔대며 웃었는데 그 이유는 신랑이 자신들이 책에서 배운 것과 똑같이 이야기해서라고 합니다. 우리 신랑은 아파 죽는데 자기네는 웃고 있으니 제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무엇 때문인지를 알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으로 수술 일정이 잡혔답니다.
▲ 강한 진통제를 맞으니 통증이 많이 가라 앉아서 잠이 올 정도로 괜찮다고 하는 신랑입니다. 아침에 병실은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시설이 조금 더 좋아보입니다. 파란 색의 은행잎이 가득한 커텐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더군요.
▲ 신랑은 창가자리였는데 햇살이 좋아서 좋았고 창 밖으로 꽃화분들이 보여서 더 좋았답니다.
▲ 갑자기 의사들이 들어오더니 신랑을 데리고 갔습니다. [ 저녁에 수술한다면서요? ] 라고 물으니 [ 아뇨. 지금 바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 라고 말합니다. 아랫층까지 함께 내려가서 마취하기 직전에 신랑을 응원하고 저는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 괜찮아, 여보. 간단한 수술이니까 걱정하지마. 행운을 빌어! ]
▲ 3시간 30분이 지난 뒤 신랑이 돌아 왔습니다. 수술은 조금 더 빨리 끝났지만 회복실에서 회복을 조금 하다가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 요즘은 수술이 많이 좋아졌더라, 칼로 째는 줄 알았는데 구멍 3개만 뚫어서 했더라고.. ] 신랑 배에 구멍이 3개가 났습니다.
▲ 곧이어 식사가 나왔습니다. 신랑이 마취가 다 깨기도 전에 [ 알러지 있어? 기본 식단 괜찮지? ] 라고 물어보길래 저걸 왜 물어보나 싶었는데, 밥이 바로 나올줄이야! [ 맹장수술하면 방귀 끼기 전에는 뭐 먹으면 안되는거 아냐? ] 라고 신랑에게 말했더니 신랑도 [ 응, 그렇게 알고 있는데... ] 라고 말을 합니다. 간호사에서 두번, 세번 재차 물어봤답니다. [ 이거 진짜 먹어도 되요? ] 그랬더니 [ 응! 먹어도 돼~ 뭐든 다 먹어도 돼~ ] 라고 합니다. [ 근데 방귀 끼면 꼭 알려줘! ] 라고 말하고 가버리는 간호사님...^^;;
▲ 완벽한 키위식이 나왔습니다. 소고기 요리와 으깬감자, 고구마 한쪽, 삶은 완두콩입니다. 디저트로 커스터드 크림을 부은 통조림 과일이 나왔는데 건강을 위해 당도 없이 나오다보니 맛은 영 좋지 못했습니다. 헌데.. [ 이거 먹어도 되나? ] 의심이 가득했지만, 이틀을 쫄딱 굶은 신랑은 맛있게 먹었답니다. 한국 병원에서 이런 음식이 나오는 것은 사실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아주 평범한 이곳의 기본식이랍니다.
한국에서는 맹장수술을 하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 입원생활을 하지만 이 곳에서는 길면 이틀이면 퇴원을 시킵니다.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회복속도는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다보니 아기를 낳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 아기를 안고 모두들 밖으로 나오는 거겠죠. 아픈 와중에도 신랑은 바빴습니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빠지게 된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야 했고 갑자기 나오게 된 병원비 걱정에 미리 들어놨던 보험의 약관들을 살펴봐야했죠. 다행히도 최근에 넣었던 현지 보험의 혜택을 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여튼 이왕 쉬는 김에 신랑 묵은 피로와 스트레스 또한 다 풀렸으면 좋겠네요.
신랑과 저녁시간까지 함께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 큰 집에 저 혼자 있으려니 정말 서글픕니다. 얼마전 친정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허전함을 크게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신랑까지 없으니 그 허전함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신랑과 함께 잠이 들 때는 서로가 함께 있음에 좁다, 이불 가져가지 마라 등의 잔소리를 가득 했었는데.. 신랑이 하루 없어보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그리운지요. 모두들 아프지 맙시다. 특히 외국에서 아프지 맙시다. 건강이 최고인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저런 문제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내 나라 대한민국이 의료서비스는 정말 제대로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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